우주와 인간-김정택 그림 제공 포털아트
양반 세상에서 세종이 한글 창제를 꿈꾸었다는 건 혁명적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종이 신하를 시켜서 한글을 창제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는 세종 자신이 한글 창제를 주도한 언어학자였습니다. 그래서 ‘세종실록’에서도 훈민정음에 대해서만은 유일하게 ‘친제(親制)’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비밀리에 진행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진행했다면 양반 기득권 세력의 반대로 훈민정음 창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한글은 ‘한(韓) 나라의 글’이고 ‘큰 글’이고 ‘세상에서 첫째가는 글’입니다. 한글이 있어 지금 우리는 우리의 말과 생각을 글로써 표현합니다. 한글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의 컴퓨터 자판과 휴대전화 자판은 모두 한문을 구현하기 위한 조합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민족의 바탕은 고유의 말과 글이고 그것이 없으면 민족이라고 내세우기가 어렵게 됩니다. 만주어와 만주족이 사라진 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외국어로 일색을 이룬 아파트 상가 간판의 홍수에 떠밀려 한글은 지금 이 골목 저 골목 어두운 사각지대를 배회합니다. 제 집에서 문전 박대당하고, 제 집에서 쫓겨난 한글의 신음이 국적 불명의 도시를 배회합니다. 하지만 제 집으로 돌아가 한글의 이름으로 눌러앉을 만한 빈틈은 여전히 없어 보입니다.
한글이 없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시간입니다. 한글이 창제되지 않아 여전히 한자를 사용하는 한국인, 일제강점기처럼 일본말과 일본이름을 사용하는 한국인을 상상해 보세요. 그러면 내가 물려받은 한글, 내가 배운 한글, 내가 쓰는 한글이 얼마나 아름답고 완벽한 정신적 유산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한글, 우리 마음에 품고 우리 마음처럼 평생 갈고닦아야 할 보배입니다.
박상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