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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녕]“한국은 중국어 쓴다”

입력 | 2010-10-09 03:00:00


군 출신이 통치하는 나라, 옛 포르투갈의 식민지, 중국어를 사용하는 국가, 동남아에 속하는 나라, 세계문화유산이 없는 나라, 영양부실 국가. 어느 나라에 대한 설명일까. 터무니없게도 이탈리아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독일 멕시코 칠레의 교과서에 나온 한국 관련 기술(記述)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2007년부터 3년간 수집한 외국 사회과 교과서 905종을 분석한 결과 477종에서 이 같은 오류가 드러났다. ‘태권도는 중국에서 차용한 것’(호주)이라고 설명한 교과서도 있었다. 중국과 일본의 교과서 중에는 자국의 시각에서 우리 역사를 왜곡한 내용이 많았다.

▷교과서는 어린 학생들이 세상을 내다보는 창(窓)이다. 교과서에 한국이 이처럼 엉터리로 묘사돼 있다면 외국 학생들이 한국을 어떻게 기억하겠는가. 어려서 뇌리에 박힌 인식은 어른이 돼서도 쉽사리 바뀌지 않는 법이다. 외국인 가운데는 남한과 북한을 구분하지 못하고, 우리의 대표적 기업인 삼성을 일본 기업으로 아는 사람도 많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의 참모습을 세계에 제대로 전파하지 못한 우리 잘못이 크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중심이 돼 2000년부터 오류를 찾아내고 시정하는 일을 꾸준히 추진했다. 성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나라의 교과서에 오류가 남아 있고, 미처 잡아내지 못한 오류도 많을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담당인력 6명이 오류를 찾아내고 시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외국 교과서의 한국에 관한 오류는 이들 나라가 중국학이나 일본학보다 한국학에 무관심한 탓도 크다. 교육과학기술부 외교통상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 부처들이 더 조직적으로 나서야 한다. 외국의 교육당국과 관련 기관은 물론이고 출판사, 언어·문화 분야 민간단체들의 협조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오류의 시정뿐 아니라 한국에 관한 의미 있는 사실들을 새롭게 알리는 일도 중요하다. 21세기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이미지는 국가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소프트파워다. 우리 스스로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고 오늘의 성취에 자부심을 갖는 것만으로는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없다. 외국인들이 우리를 제대로 알게 해야 국가 이미지를 끌어올릴 수 있다. 민주화를 이룩한 게 언제인데 아직도 한국을 군사독재국가로 알고 있단 말인가.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