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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황인성 前국무총리…장관 - 의원 - 회장 - 총리… 政官財界화려한 이력

입력 | 2010-10-12 03:00:00


황인성 전 국무총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994년 2월 김영삼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 만찬장에 들어가고 있다. 그의 왼쪽은 김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총리, 오른쪽은 김종필 전 총리(당시 민주자유당 대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1일 별세한 황인성 전 국무총리는 군 출신이면서도 정계, 관계, 재계를 오가며 화려한 이력을 쌓았다. 육사 4기인 고인은 경리장교로 국방부 재정국장과 5·16군사정변 직후 군사정부의 초대 조달청장을 지낸 뒤 1968년 예비역 소장으로 예편했다. 계수에 밝고 업무처리가 꼼꼼한 것으로 유명했다.

1950년대 말 일선 경리장교가 경리단 간부에게 상납을 했다는 투서 내용을 조사하던 강영훈 장군(훗날 총리)이 당시 경리단장이던 ‘황인성 대령’만은 ‘떡값’을 돌려줬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칭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때부터 각별한 관계였던 두 사람은 뒷날 모두 총리가 됐다.

황 전 총리는 예편 후 관계에 발을 들여놓은 후 관선 전북지사와 교통부 장관을 거쳤다.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계로 진출해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11대(전북 진안-무주-장수), 12대 의원(전국구)을 지냈다. 1985년에는 농림수산부 장관으로 임명돼 두 번째 장관을 지냈다.

1988년에는 재계로 자리를 옮겨 1993년까지 아시아나항공 사장과 회장을 지낸 다음 3당 합당 후인 1992년 14대 총선에서 여당인 민주자유당 후보로 열세 지역인 호남에서 다시 당선됐다.

이듬해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초대 총리로 발탁됐다. 호남 출신으로 지역화합을 이룰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10개월의 총리 재임 기간은 평탄하지 못했다. 국회에 나와 “12·12사태가 불법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했다가 야당의 집중 공격을 받았고 결국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로 인한 쌀 개방 파동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 후 금호아시아나그룹 상임고문과 안중근 의사 숭모회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애섭 여사와 아들 규선 규용 규완 씨, 딸 정숙 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4일 오전 6시. 02-3410-6917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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