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여부 묻자 “동반 퇴진땐 혼란”
라응찬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11일 차명계좌를 만들어 운영했다고 사실상 시인했다. 이날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이와 관련해 라 회장의 차명계좌 및 신한은행 비자금 조성에 대한 추가 의혹이 잇따라 제기됐다.
라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신한은행 본점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명계좌를 개설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예전에 밑에 시킨 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적으로 계속 이어져 온 것 같다”고 답해 차명계좌의 존재를 인정했다.
이와 관련해 조영택 민주당 의원은 이날 금융위원회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라 회장의 차명계좌 운영액수가 (경남 김해시) 가야CC에 투자한 50억 원 이외에 수백억 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백순 신한은행장이 지난해 3월 오사카 지점장에게 비자금 마련을 지시했다”며 “유상증자 과정에서 실권주를 배분받은 재일교포 주주가 (그 대가로) 당시 오사카 지점장을 통해 이창구 전 신한은행 비서실장에게 도장과 5억 원을 교부했으며 비서실장이 40여 차례에 걸쳐 현금과 수표로 인출해 금고에 보관했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이 지난해 5월 신한은행에 대한 종합검사 때 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를 확인하고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우제창 민주당 의원은 “금감원이 당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라 회장 간의 거래를 조사해 재일교포 4명과 내국인 2명의 차명계좌가 이용됐음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라 회장의 지시로 실명을 확인하지 않고 예금계좌를 개설하고 자금을 인출해 라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신한은행 직원들의 자백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라 회장에 대한 차명계좌 및 신한은행 비서실의 비자금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자 금융위는 다음 달 신한금융에 대해 종합검사를 실시한 뒤 라 회장을 포함한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금감원의 종합검사를 통해 관련된 사항을 들여다본 이후에 적절하게 책임 문제가 거론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라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향후 거취를 묻는 질문에 “조직의 안정과 발전을 생각하면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며 나름대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자신과 신상훈 사장, 이 행장 등 최고경영진의 동반 사퇴론에 대해 “이런 혼란기에 동반 퇴진하면 조직이 어떻게 될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는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해 단기간에 자진 사퇴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