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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기자의 That's IT]편리함 넘어선 진보 이끄는 ‘스마트폰 레지스탕스들’

입력 | 2010-10-13 03:00:00


얼마 전 평소 알고 지내던 유명 포털사이트의 개발팀장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였습니다. 이분이 스마트폰을 쓰지 않더군요. 회사에서 지급해준다는데도 일부러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녁식사 도중 직속 상사인 회사의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전화해서 “예전에 받았던 e메일 자료를 전달해 달라”고 하는데도 “스마트폰이 없어 불가능합니다”라고 대답하더군요. 이분은 “업무에서 벗어난 시간까지 일이 파고들어오는 게 싫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이런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해주기 위해 진행되는 듯한 연구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타자를 치는 대신 손으로 직접 ‘필기’를 해야 아이들의 학습 효율이 높아진다거나, 스마트폰과 인터넷 사용을 중단한 채 멀리 여행을 떠나면 기억력이 향상된다는 식이죠. 아닌 게 아니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최근 실험에서 생쥐가 새로운 길을 배운 뒤 휴식 시간을 가지면 쉼 없이 계속 새 길을 배운 생쥐보다 길을 잘 기억한다는 것도 밝혀냈습니다. 24시간, 365일 쏟아져 들어오는 e메일과 업무자료에 치이는 직장인들 덕분에 이런 얘기가 예전보다 더 화제가 되는 셈입니다.

이렇게 ‘스마트폰 스트레스’가 늘자 앞서 말한 개발팀장처럼 오히려 스마트폰 시대에 저항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예전에 디지털 제품이 급속도로 보급되자 MP3플레이어가 싫다며 레코드판(LP)을 듣고, 디지털카메라 대신 필름카메라만 고집하던 ‘아날로그 마니아’들의 모습과 비슷하죠.

그런데 이렇게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은 사람들이 사실은 기술의 발전을 이끕니다. 디지털 기술은 아날로그 기술의 많은 걸 희생시키면서 ‘편리함’이라는 장점 하나만 극단적으로 부각시키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MP3파일이 재생할 수 있는 소리의 범위는 LP와는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부족합니다. 공연실황을 공들여 녹음한 LP는 연주자가 콘서트홀의 두꺼운 카펫 위를 걸어 피아노 앞까지 걸어가는 발소리까지 담아낸다고 합니다. 하지만 MP3로는 불가능하죠. 필름카메라는 무한한 자연의 색을 최대한 100%에 가깝게 재현합니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는 수십만 가지의 미리 입력된 색 정보 속으로 자연광의 무한한 스펙트럼을 짜 맞춥니다. 세밀하고 미세한 차이들은 모두 사라지는 셈이죠. 그래서 MP3파일 기술은 그동안 더 많은 음의 범위를 담기 위해 발전해 왔고, 디지털카메라는 필름 못잖게 넓은 색의 스펙트럼을 포착하려고 애써왔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품질 좋은 MP3플레이어와 디지털카메라는 이런 아날로그 마니아들이 만든 셈입니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족과 보내는 시간, 머리를 식힐 여유를 포기하지 않도록 스마트폰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이런 방향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집에 들어가면 스마트폰이 내 위치를 파악해 식구들 이외의 전화나 e메일은 자동으로 차단해준다거나, 오후 7시가 넘으면 내게 문자메시지나 e메일을 보내는 상대방에게 “퇴근 이후에도 연락할 정도로 급한 일인가요?”라고 한 번 대신 물어봐주는 모습 말이죠.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