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사안을 묶어 교환 처리하는 방식 자체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다. 의회정치에서 협상은 있기 마련이고 빅딜은 하나의 방식이다. 협상 당사자가 두 개 이상의 사안에서 입장이 다를 때 어떤 것은 이쪽이 원하는 대로 다른 것은 저쪽에서 바라는 대로 합의할 수 있다. 쟁점 사안에 대한 당사자 입장이 사전에 분명히 알려져 있으면 그러한 거래가 진척되기에 좀 더 용이할 것이다.
헌법의 개정논의는 시작부터 정치적 흥정이 추호도 개입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겠다. 개방적인 민주정치에서 개헌은 기존 헌법에 정해진 절차를 따라야 하고 국회나 시민사회에서 적어도 수개월 공론화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밀실협상 위주로 달성되기 어렵다. 국회에서 여야가 빅딜을 통해 개헌 논의를 개시한다고 해서 비난부터 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는 머뭇거릴 시간 없는데
18대 국회의 후반기에 들어서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개헌 논의의 개시 여부조차 당 차원의 입장이 확연하지 못한 점은 무책임한 노릇이다. 개헌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는지, 필요하지만 정치권이나 일반국민의 여론 향방에 비추어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지,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쟁점화하고 19대 국회에 가서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정치권은 이런 원초적인 질문에 설득력 있게 대답해야 한다.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시민사회에서도 개헌의 범위와 내용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펼쳐질 것이다. 올해 하반기에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지 않으면 내년 상반기 안에 최소 범위의 개헌도 마무리되기 쉽지 않다. 총선과 대선 국면으로 접어드는 내년 하반기부터 차기 행정부의 출범 시까지는 차분한 개헌 논의에 알맞은 때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월 ‘대통령 4년 연임제와 선거주기 일치’의 원 포인트 개헌 의사를 밝혔다. 야당은 물론 여당조차 노 대통령의 개헌 추진에 찬성하지 않았다. 4월에 가서 여야정당 원내대표는 개헌문제를 18대 국회 초반에 처리하기로 합의했고 노 대통령은 개헌안의 공식 발의를 유보했다.
18대 국회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은 개헌문제에 성실하게 대처했다. 자문기구를 구성하여 헌법전반에 대하여 연구하도록 했다. 대통령보다는 국회에서 발의하고 심의, 의결하는 가운데 공론화를 거치고 국민투표로써 결정하는 절차가 더 낫다. 자문위원회의 연구결과보고는 현행 헌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신장하고 권위주의 체제를 탈피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국내외 상황 변화에 대한 새로운 사고와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국가시스템 전반을 헌법적 차원에서 재검토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부 형태에 관해서는 단일안으로 수렴된 의견을 개진하지는 못했지만 사회 변화에 부응하는 기본권의 보완과 국가권력구조의 분산을 제안했다.
여야 입장 정리조차 안돼있어
국회가 개헌 논의를 공식화해도 백지상태에서 출발하지는 않을 것이다. 의원연구단체인 미래한국헌법연구회는 여야 의원 186명으로 구성되어 개헌문제를 다뤘다. 사실은 의원 다수가 개인 수준에서는 개헌의 필요성이나 개헌 논의의 본격화에 뚜렷한 반론을 갖고 있지 않다. 시민사회에서도 대화문화아카데미를 비롯한 몇몇 단체가 나름대로 개헌안을 모색했다.
국민의 대표인 의원은 일반인의 관심에 부응하는 입장을 세워야 한다. 그 입장을 납득할 만하게 해명하고 실천하기 위한 행동을 보여야 한다. 선거를 통해 책임을 지고 유권자의 심판을 받겠다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18대 국회의원들은 개헌문제에 대해 개인적으로나 소속정당 차원에서 어떻게 할지 더는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