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과 소통의 정치/최진홍 지음/이학사
《“인심이 함께 옳다 하는 것을 공론(公論)이라 하며, 공론의 소재를 국시(國是)라 합니다. 국시란 한 나라의 사람이 의논하지 아니하고도 함께 옳다 하는 것이니 이익으로 유혹하는 것도 아니며, 위엄으로 무섭게 하는 것도 아니면서 삼척동자도 그 옳은 것을 아는 것이 곧 국시입니다.”(율곡이 대사간 직을 사양하며 선조에게 올린 상소 중)》
공론이 왜곡되면 소통이 안된다
폐정의 원인은 소통의 단절에 있었다. 율곡에게 정치는 곧 소통이었다. 폐정의 첫째는 잘못된 인사 문제였다. 백성들이 현실을 정치의 장에 전달하고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데, 매개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것이다. 율곡은 능력 있는 자와 덕을 가진 자를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폐정은 왜곡된 공론 문제에서도 기인한다고 봤다. 율곡은 공론 정치에서 결론에 가까운 ‘논(論)’만 있지 여럿이 함께 의견을 조율하는 ‘의(議)’가 없다고 한탄했다.
율곡은 먼저 나라의 근본인 군주의 수신(修身)을 강조했다. 군주가 소통에 적극적이어야 백성과 나라가 안정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에 “흥성했던 시기로 돌려놓겠다는 뜻을 세우고, 학문을 통해 뜻을 강하게 하고, 공정한 도량을 넓히고, 현명한 선비들로부터 훌륭한 조언을 받고, 신하가 임금께 말을 아뢸 때 시간에 구애되지 말고 직접 아뢰게 하시라”는 내용이 담긴 상소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선조에게 올리기도 했다.
수신의 궁극적인 목적은 안민(安民)이었다. 율곡은 법 집행자들이 과거의 폐법을 답습하고 백성을 약탈하는 점을 꼬집었다.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세운 선조들의 뜻은 그대로 받들되 경직된 법에서 벗어나 때에 맞춰 백성들의 생활을 돌아봐야 하는데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율곡은 상소 만언봉사에서 이같이 밝혔다.
“때에 알맞게 한다는 것은 때에 따라 변통을 하고 법을 마련해 백성을 구제하는 것을 말합니다.…대개 법이란 때에 따라 제정하는 것이니, 때가 바뀌면 법도 같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율곡에게 정치는 ‘정(政)을 행함으로써 치(治)를 이룩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소통’이 핵심이었다. 저자는 “율곡이 현실을 인식하고 행동한 바가 오늘날 정치에도 하나의 지침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