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송영수 40주기 회고전-배형경 ‘생각하다…’전
미술계의 냉담한 반응에도 인체 조각을 고집해온 배형경 씨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 브론즈소재의 작품으로 막대기는 인간 사이의 관계성을 상징하며 사회적 존재인 ‘나’는 ‘너’와 관계를 맺으며 ‘우리’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일깨운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27세에 최연소 국전 추천작가에 오른 송영수. 아카데믹한 인체 조각이 대세였던 시대적 상황에서 그는 쇠와 불을 이용한 철 조각을 파고들면서 독보적 발자취를 남긴다. 건설부로부터 경부고속도로 준공 기념탑을 의뢰받아 작품 제작을 추진했던 그는 안타깝게도 40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타계한다. 가족나들이 한 번 가지 못할 정도로 짧은 생애를 조각의 제단에 바친 예술가. 그와 교유했던 문학평론가 이어령 씨는 이런 비문(碑文)을 남겼다.
‘피 없는 돌에 생명을 주고 거친 쇠붙이에 아름다운 영혼을 깃들이게 한 사람/마흔한 살의 자기 나이보다 더 많은 날들을 살며 그는 이곳에 잠들어 있다.”
○ 가지 않는 길
거친 쇠붙이를 다듬어 만든 ‘십자고상’. 1950년대 한국 조각계에 생소했던 용접 철 조각을 과감하게 시도한 조각가 송영수의 40주기를 기념하는 회고전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개막식에 앞서 작가의 아내 사공정숙 씨(고려대 명예교수)는 상기된 얼굴로 전시장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예술을 위해 태어나 삶을 불태우다 불속으로 사라진 사람이다. 항상 호주머니에 스케치북을 갖고 다니면서 전차에서도 작품을 그렸다. 머리맡에 수첩을 놓고 자다말고 일어나 드로잉한 뒤 나를 깨워 ‘좋지? 좋지?’라고 말하며 행복해했다. 막내의 생일날, 집을 나서며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도 ‘나는 참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 외로운 길
전시장도 관객도 없는 60년대에 남이 가지 않는 길을 묵묵히 걸어간 조각가의 작품을 만난 뒤에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의 ‘2010 오늘의 작가’전을 둘러보기를 권한다. 이곳에선 11월 11일까지 배형경 씨(55)의 ‘생각하다, 말하다’전이 열리고 있다.
배 씨는 ‘지난 30년간 한국 조각계의 비주류로 전락한 표현주의 구상조각, 인체조각’을 고집해 온 조각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성에 대한 관심을 내면화해 철과 브론즈로 고독한 인간 군상을 만든다. 맑은 가을 하늘 한 번 쳐다볼 새도 없이 온종일 작업에 매달린다는 작가. 전시장에는 자신만의 고독, 무거운 짐을 진 인체상이 자리해 존재의 원초성에 질문을 던진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