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못찾는 ‘사막의 허브’… 조감도엔 먼지만
11일(현지 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팜 데이라’. 4635만 m²나 되는 바다를 매립해 세계 최고급의 관광레저 시설과 고급 거주지를 만들려고 했던 이곳에는 개발의 굉음 대신 적막감만이 감돌았다. 바닷바람이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 바람과 엉켜서 내는 소리만 요란했다.
약간의 용지 조성 및 매립 공사만 진행된 채 멈춘 건설 기기들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고, 공사 자재들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인부들과 바다를 매립하는 데 필요한 모래를 실어 나르는 트럭들로 붐벼야 할 공사장 입구에는 녹이 슨 철제 경비실만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지난달 26일 두바이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은 미국 켄터키 주에서 열린 한 승마대회에 참가해 “우리(두바이)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25일 방만한 개발전략으로 자금난을 겪던 두바이 재무부가 최대 국영 회사인 두바이월드와 자회사 나킬의 채무 상환을 6개월간 유예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터진 이른바 ‘두바이 쇼크’에서 마침내 탈출했음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기자가 1년 반 만에 다시 둘러본 두바이의 ‘세계 최초’ ‘세계 최고’ 개발 프로젝트 현장들은 아직도 쇼크의 후유증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 신기루처럼 사라진 장밋빛 청사진들
“두바이는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는 경제학의 기본 원칙을 따르지 않았다. 물류 허브를 넘어서 관광 및 금융허브로 도약이라는 혁신적인 개발전략과 비전을 제시한 뒤 외부에서 투자를 끌어와 인프라를 공급하면 수요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는 장밋빛 생각만 했던 것이다.”
쇼크 후유증 언제까지… ‘두바이 쇼크’가 터진 지 1년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두바이의 대형 개발 프로젝트들은 기약 없이 중단된 상태다. 11일 두바이 시내 외곽의 한 대형 공사장에선 건설 장비와 인부를찾아볼 수 없었다. 공사 현장에는 오래돼 보이는 건설자재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었다. 멀리 보이는 두바이 도심의 대형 빌딩들 중에도 공사가 중단된 곳이 많다. 두바이=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그러나 1년 반 만에 비즈니스베이의 야경은 크게 바뀌었다. 멈춘 크레인, 불빛 없는 빌딩, 인부와 공사 장비가 없는 공사장을 쉽게 볼 수 있다. 쇼크 발발 전후로 투자자들이 투자를 포기했거나 보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한 건설사가 최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비즈니스베이에서 현재 공사가 시작된 건물 115개 중 57개(49.6%)가 공사 중단 상태다. 또 공사 계획은 있지만 아직 착공도 하지 않은 건물이 100개 정도 된다.
두바이의 경제, 사회적 수준과 법치주의 확립이 다른 중동 국가들처럼 글로벌 스탠더드에 크게 못 미친다는 것도 두바이의 개발전략을 어렵게 만든 이유로 꼽힌다. 다국적 부동산 컨설팅회사인 CBRE 두바이지사의 매슈 그린 리서치팀장은 “해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한다는 정부가 성장률, 부동산 가격 추이, 공실률 같은 기본적인 경제통계조차 체계적으로 관리·발표하지 않아 정확한 시장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운 게 두바이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기가 좋을 때는 이런 점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쇼크가 터진 뒤에는 두바이가 다시 투자를 이끌어내는 것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투명성의 확립 없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지도자 혼자 뛰어서는 지속적인 성장은 불가능
현지 최대 일간지인 걸프뉴스의 경제담당 에디터 사이푸르 라만 씨는 “지도자 한 명이 모든 발전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 위기를 통해 확인됐다”며 “정부, 공공기관, 언론사 같은 사회 핵심 섹터에 두바이의 인재들이 더욱 많이 진출해 장기적인 비전과 책임을 가지고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치자인 알막툼은 전 세계를 다니며 두바이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투자를 끌어오는 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정작 두바이 국민은 이를 뒷받침할 역량이 안됐다는 뜻이다.
약 150만 명인 두바이 인구 중 현지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정도밖에 안된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특별한 일을 하지 않은 채 정부의 넉넉한 지원금을 바탕으로 ‘편안하게’ 생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와 언론도 최상위층 인력들만 현지인이고 그 아래 인력들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두바이를 떠날 수 있는 외국인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두바이의 미래에 애정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끝까지 희생할 자세가 돼 있지 않다. 걸프뉴스도 200명이 넘는 기자 중 현지인은 5명이 채 안 된다.
투자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현지인 알 팔라히 씨는 “그동안 인적투자에 대한 관심이 너무 낮았던 게 사실”이라며 “돈과 인력을 모두 두바이 밖에서 끌어오는 방식의 경제개발은 지속성도 없고 위기에 너무 취약하다는 사실을 각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바이=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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