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도 눈물도 없다고?… 선수는 매일 진화해야…
김성근 SK 감독은 한국시리즈 3차전을 승리로 장식하며 시리즈 3연승을 달렸다. 그날 밤 그는 잠이 안 왔다고 한다. 우승이 거의 손 안에 들어왔더라도 4차전을 지면 시리즈 전체를 내줄 것 같아 걱정돼서였다. 보통 사람은 쉽사리 믿기 힘든 야신(野神)의 야구 철학. 그는 쉴 새 없이 선수들을 채찍질한 끝에 최고의 결과를 이뤘다. 인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그로부터 1년이 흘러 SK는 왕좌에 올랐다.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4연승으로 꺾었다. 그렇게 염원하던 꿈이 이뤄졌지만 김 감독의 표정은 지나칠 정도로 담담했다. 20일 문학구장에서 만난 그는 “오늘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내년 시즌을 어떻게 할지 구상했다”고 했다. 완벽한 야구를 추구하는 그에게 만족이란 단어는 없었다.
―우승한 어제 저녁을 어떻게 보냈나.
―압도적인 시리즈였다. 한국시리즈에서 4전 전승이라니….
“전적과 스코어로만 따지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리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어마어마하게 고생했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스프링캠프 못지않은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 선수들은 서로 엔트리에 들려고 경쟁했다. 막판에는 누구를 빼야 할지 너무 고민이 돼 코치들에게 물어봤을 정도다. 이재영, 최동수 등 고생한 선수들을 엔트리에서 뺄 때는 너무 미안했다.”
―경기 자체로만 보면 큰 위기가 없었다.
“3차전을 이겨 3승으로 앞선 날 밤에는 걱정으로 잠을 자지 못했다. 4차전 선발로 예고한 게리 글로버가 무너지면 시리즈가 날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5차전에서는 김광현과 삼성 에이스 차우찬이 붙게 되는데 그 경기마저 지면 흐름을 내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몰라도 내부적으로는 절박했다. 고육지책 속에서 좋은 투수 운용이 나왔던 것 같다. 만약 이번에 졌다면 감독직을 내놓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선수들은 어떻게 그리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들이는지 궁금하다.
“선수들은 결실이 어떤 건지 알고 있다. 2007년 우승한 뒤 땀 흘린 만큼 보상이 나온다는 것을 느꼈다. 한계에 도전해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 우리 팀 선수들은 훈련을 하면서 왜 자신들이 이것을 해야 하는지 느끼고 있다. 무조건 시켜서 하는 노동과는 다르다. 승자와 패자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연습을 하더라도 무슨 의식을 가지고 하느냐가 중요하다.”
―기차에서 구상한 내년 SK의 야구는 무엇인가.
―주장 김재현이 명예로운 은퇴를 결정했는데….
“좋은 실력과 리더십을 가진 아이다. 재현이는 2002년 엉덩관절(고관절) 수술 후 지금까지 온 것 자체를 높이 평가해줘야 한다. 실력이 모자라거나 체력이 떨어져 그만두는 게 아니다. 자기 인생을 새로 설계할 계획이 있으니 그만두는 거다. 내 입장으론 남아 달라고 하고 싶지만 밖에서 이러쿵저러쿵 말할 게 아닌 것 같다. 모든 인생은 결국 본인의 판단이다.”
―마지막으로 올 한 해를 보낸 소회를 밝혀 달라.
“우리 팀의 1년을 통해 사람은 끊임없는 재생 능력과 잠재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지난해 말부터 김광현, 송은범, 전병두, 정대현 등 안 아픈 선수가 없었다. 모두 다 이를 잘 극복해 줬다. 특히 병두는 재기가 불가능하다는 평을 듣고서도 기적처럼 일어서 줬다. 지난해 패배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올해는 캠프 때부터 훈련 강도를 아주 높였다. 선수들이 많이 힘들었을 거다. 잘 버텨 줘 고맙고 미안하다.”
P.S.) SK 선수단은 20일부터 23일까지 4일을 쉰 뒤 24일부터 마무리 훈련에 들어간다. 하지만 김 감독은 21일과 22일 각종 행사에 쉴 새 없이 참여해야 한다. 결국 올해도 야신의 휴가는 단 하루밖에 없다.
인천=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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