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신의 물방울’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물방울’이기도 하다. 포도가 자라 와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인고의 세월이다. 왼쪽은 수확을 앞둔 프랑스 보르도 샤토 레스타즈 다르키에의 포도밭, 오른쪽은 미국 캘리포니아 다나 에스테이트에서 한 직원이 와인의 발효를 돕기 위해 포도즙을 호스로 뿌리는 모습. 보르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내파밸리=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메도크와 내파밸리의 와인은 각각 프랑스와 미국 와인의 자존심이다. 동아일보 위크엔드팀은 ‘원산지명칭통제(AOC)’에 의해 분류된 8개 메도크 원산지에서 천혜의 풍광보다 아름다운 ‘보르도 사람들’을 만났다. 세계적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 씨가 지난해 100점 만점을 준 내파밸리의 다나 에스테이트 로터스 빈야드에서 포도 수확 체험도 했다.》
프랑스 메도크 반도의 포도밭(1만6500ha)은 지롱드 강을 따라 약 100km에 걸쳐 길게 자리 잡고 있다. 메도크(M´edoc)는 ‘물의 한가운데(In Medio aquae)’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서쪽으로 대서양, 동쪽으로는 지롱드 강으로 둘러싸였기 때문이다. 메도크 와인의 8개 원산지는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오메도크, 마고, 물리스, 리스트라크-메도크, 생줄리앙, 포이야크, 생테스테프, 메도크이다.
메도크 와인협회는 동아일보 기자를 11∼16일 초청해 메도크 반도를 구석구석 안내했다. 운전대를 잡고 일정 내내 동행한 백발의 여성 양조학자 카트린 블리망 씨는 말했다. “포도원에 부는 서풍과 지롱드 강의 물은 겨울의 혹한과 여름의 혹서를 누그러뜨립니다. 일조량과 강우량도 적절해 훌륭한 와인이 만들어집니다.”
○ 아버지의 윙크를 담은 와인
메도크 반도의 최북단인 메도크는 아기자기한 물리스와 달리 야생적이고 남성적인 느낌이 강했다. 들녘에는 사냥꾼들도 있었다. ‘샤토 루스토뇌프’의 주인인 브뤼노 스공 씨(45)가 터틀넥 스웨터와 반바지 차림으로 다가와 “봉주르”라며 악수를 건넸다.
“메를로 품종은 수확을 시작했는데 카베르네 쇼비뇽은 더 잘 익도록 기다리고 있어요. 포도를 재배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매사에 서두르지 않을수록 후회를 적게 한다고….”
스공 씨는 한국에서 온 손님을 위해 와인 저장고로 나무 테이블을 옮겨다 놓고 에스프레소 커피와 초콜릿도 준비했다. 여러 와인 중 검은색 레이블의 2001년 빈티지 와인에 눈길이 갔다. ‘내 아버지의 루스토’란 와인 이름 밑에는 ‘;-)’란 이모티콘이 그려져 있었다.
어느덧 중년이 된 아들은 아버지의 그 윙크를 떠올리며 최선을 다한다. 일반적으로 대형 양조통에서 하는 1차 발효를 그는 이번 가을 나무 오크통에서 하는 모험을 시도한다. 와인 맛의 복합성을 더하기 위해서다. 로제 와인도 실험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도전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메도크 와인의 자긍심은 지키되 자만해선 안 되겠죠.”
일본 와인만화 ‘신의 물방울’ 24권이 떠올랐다. 주인공은 생전의 아버지가 참여했던 보르도 마라톤 코스를 뛰면서 부정(父情)을 찾아냈다. ‘아버지는 나에게 와인에 관해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어. 시키는 대로 허브며 흙냄새를 맡아야 했다며 오해하고 있었어. 하지만 아니었어.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가르쳐 주려 했던 거야. 와인이 무엇인지.’
스공 씨의 아버지도 생전에 보르도 와인의 핵심인 포도 품종별 ‘블렌딩의 미학’을 윙크에 담아 아들에게 대물림하려던 게 아니었을까. 특히 그가 애착을 가졌다는 프티 베르도 품종은 최종 블렌딩 단계에서 제비꽃향과 기분 좋은 산도를 주는 ‘약방의 감초’가 아니던가. 요즘 메도크에서 이 품종의 비율이 높아지는 걸 그의 아버지는 이미 10년 전 예견했던 걸까.
보르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