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여행전문기자의 코리안 지오그래픽… 충남 강경
‘신택리지’ 연작을 내고 있는 ‘우리 땅 걷기 모임’ 대표 신정일 씨.
이 책은 이중환(1690∼1756)이 30년간 전라 평안 두 도만 빼고 전국을 다니며 수집해 정리한 지리 사회 경제 연구서. ‘진정 사대부가 살 만한 땅은 어딜까’라는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그가 펼친 순행(巡行)의 결과다. 도별로 나눠 벌써 다섯 권의 ‘신택리지’를 낸 신 씨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살 만한 땅이요? 그게 따로 있을까요. 어디든 자기 스스로 만들어야지요.” 풍요의 가을은 논산에도 왔다. 강경 논산의 너른 들판은 누런 알곡에 황금빛으로 물들고 푸른 금강은 가을하늘을 담아 더더욱 푸르다. 먼 길 날아온 기러기 떼는 벌써 탑정호 노을 진 서편 하늘을 가로지르고 서해서 놀다 고향 찾아 금강 거스른 숭어 떼도 강경천 다리 밑에서 소란스럽다.
이 모습이었을까. 강경에서 자라 강경에서 시를 쓴 ’눈물의 시인’ 박용래가 ’햇무리의 하관’이라고 표현한 강경의 땅거미 지는 저녁 나절이. 백로 한 마리가 해거름의 가을날 노을 진 탑정호 하늘을 유유히 날아가고 있다.
○ 걸어서 강경 둘러보기
지금은 강경천 둔치가 되어버린 채운면 삼거리 터의 미내천 위에 영조 7년(1731년) 건축된 석조홍예교 미내다리. 아치의 곡선미가 이름다운 다리다.
다음 행선지는 옥녀봉. 80m 높이의 언덕 형상이지만 평지 강경에서는 어엿한 산이다. 위치는 강경천 논산천이 합류하는 금강변. 찾기도 쉽다. 강경천 둑길 끄트머리다. 꼭대기의 주변 전망은 멋지다. 금강과 읍내, 금강 건너 부여군 세도면과 10km 밖 논산 시가는 물론이고 멀리 대둔산까지 훤하다. 논산 강경의 황금들녘도 한 눈에 들어온다. 산정은 거대한 팽나무 차지. 그 옆에 봉화대와 팔각정이 있다.
팔분능선 둔덕의 폐가 한 채, 허름한 가겟집이 눈길을 끈다. 폐가는 한국 최초의 침례교회인 ‘강경침례교회’. 이 가게는 이곳에 일제가 지은 신사의 관리사로 손옥례 씨(76)가 시어머니 유옥녀 씨와 함께 46년간 살아왔다. ‘옥녀봉에 사는 옥녀’로 유명한 110세의 논산 최고령 유 할머니는 18일 작고했다.
옥녀봉에 남은 유일한 건물인 이 가겟집에서 46년째 살고 있는 송옥례 할머니.
포구 내 물길에는 늘 배 수십 척이 정박돼 있었다. 주변은 객주의 창고가 즐비했고. 팔도 상인이 유숙했던 객줏집과 여관, 식당은 갑문 근방 옥녀봉 기슭을 빽빽이 뒤덮었다. 그 광경은 정미소 터에 포구 노조사무실 등 일제수탈 현장을 재현한 시민공원에 걸린 옛 사진에 남아 있다. 주야로 상인과 짐꾼, 객주, 어부로 넘쳐나던 강경포구. 20세기 들어 철도와 도로가 수운을 대체하는 바람에 쇠락한 지금은 옛 영화만 추억하는 소읍으로 추락했지만 강경이 대전보다 먼저 읍으로 승격된 역사는 아직도 노인들의 자랑거리다.
○ 강경읍 곳곳에서 만나는 근대 건축물
논산시내 농방골목의 36년 역사 할매해장국집의 시래깃국 백반.
중앙초등학교 뒤로 돌아 들어가면 옛 강경장터. 일제 당시를 상기시키는 일본식 2층 건물이 키 낮은 옛 건물 틈에서 간간이 눈에 띄는데 전체적으로 1930∼60년대 건물이 많다. 그래서 걷다 보면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든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이라는 벽돌건물. 일제하 조선은행이 전신이다. 또 하나는 근대기 한옥의 전형인 남일당 한약방. 1923년에 지은 목조 2층 건물로 지금도 건재하다.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 안드레아가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 후 배로 천신만고 끝에 서해를 건너 강경포구로 상륙한 뒤 첫밤을 보낸 집터도 근방(홍교리 100-1)에 있다. 현재 강경성당 신자들이 집터를 구입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강경읍내 중앙리 옛 장터골목에 유일한 탁배기 식당 서창집. 1960, 70년대를 상기시키는 골목 모습이 정겹다.
서창집은 옛 장터 골목의 유일한 선술집. 토박이 최삼순 씨(60)가 혼자 운영하는데 식당 비운 채 밭일 나가서도 휴대전화로 기별만 하면 내쳐 달려와 밥과 술을 내는 영락없는 옛날 탁배기집이다. 홀 안에 주방과 내실, 드럼통 엎어 만든 둥근 탁자 한 개와 사각테이블 두 개가 전부. 꽉 채워도 스무 명 들어갈까 말까 할 만큼 옹색하고 허름하지만 이 동네서만큼은 그게 운치다. 오후 8시 강경 지인의 안내로 그 집을 찾아 장터골목에 들어섰다. 낮은 지붕의 낡고 허름한 집들로 이뤄진 좁은 골목. 침침한 가로등의 어두운 골목은 서창집 아크릴 간판의 밝은 형광등 불빛으로 겨우 생기를 유지했다.
최 씨가 낸 안주는 돼지껍질볶음과 쌉싸래한 송사리찌개, 갈치조림. 찬도 찬이지만 막걸리잔이 더 기막혔다. 겉에 ‘복(福)’를 써넣은 하얗고 묵직한 사기 사발인데 옛 추억을 되새기게 할 만큼 정겹다. 그런 서창집의 쪽 의자에 앉아 사발로 마시는 탁배기 맛은 일품이었다. 벽에는 3년 전 일본에서 출판된 책 ‘막걸리 여행’에 실린 서창집 쪽 사본이 붙어 있다.
○ 산과 강, 평야와 저수지가 한데 어우러진 논산
논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꼽자면 단연 탑정호의 해질녘 서편 하늘 노을이다. 백로와 더불어 일찍 찾은 기러기 떼까지 붉게 물든 하늘로 날아올라 호반의 정취를 더욱 짙게 더한다. 석양낙조는 동편의 신풍리 호안에서 봐야 제격이다. 논산은 계백장군 500 결사대의 황산벌전투(660년) 현장으로 은진미륵 등 백제문화유적이 많다. 사찰도 여럿이지만 고려초 창건한 불명산의 쌍계사(양촌면 중산리) 풍치만 한 곳은 없다. 특히 국화 연꽃 등 여섯 가지 꽃문양으로 장식한 대웅전의 꽃살문은 보물로 지정됐다. 이 문은 겉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법당 안에서도 봐야 한다. 실내는 한지로 덮여 꽃문살 그림자가 드리워질 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아 신기할 따름이다. 풍경소리 가운데 낙엽 구르는 소리가 듣고 싶다면 이 가을 반드시 찾아볼 일이다.
◇찾아가기 ▽강경 △철도: 서울역에서 익산행 열차를 타면 강경 역에서 내린다. △고속도로: 천안논산고속도 서논산 혹은 연무 나들목 이용. ▽논산 △철도: 용산∼목포 전 객차 정차. KTX는 목포서 1시간 55분, 용산서 1시간 19분 소요. △고속도로: 논산천안고속도로 서논산 나들목 이용.
◇논산관광 ▽홈피: tour.nonsan.go.kr ▽제14회 강경발효젓갈축제 △기간: 20∼24일 금강변 체육공원 △홈페이지: www.ggfestival.co.kr ▽축제참가 기차여행 △상품: 강경발효젓갈&대둔산 수락계곡(논산역 주관) △기간: 20일∼12월 30일 매주 토요일(오전 7시 50분 용산역 출발). 축제기간(20∼24일)엔 매일 운행 △예약: 다음카페(논산역) 혹은 www.korail.com △문의 041-732-7273 ▽백제군사박물관: 계백장군 묘, 황산벌전투 전시물 등 백제 사비시대에 득안성이 위치한 군사요충지 논산의 역사를 모은 곳으로 백제 등 삼국시대의 군사유물 전시. 공원처럼 조경이 잘 단장돼 산책하기에 좋다. 월요일 쉼. △주소: 부적면 신풍리7 △전화: 041-730-4538
논산시내 옛날집의 간장게장.
“육젓(새우)이라면 아래치(전남 신안군)가 최고지요.” 강경갱갱이젓갈 여주인 김영옥씨가 바가지에 육젓을 푸짐하게 퍼담으며 한 말이다.
글·사진 논산=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코리안지오그래픽 ‘논산 강경 가을여행’ ①
코리안지오그래픽 ‘논산 강경 가을여행’ ②
코리안지오그래픽 ‘논산 강경 가을여행’ ③
코리안지오그래픽 ‘논산 강경 가을여행’ 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