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서다 풍덩… 봉 세우다 풍덩… 3일째 어느 순간 보드가 앞으로
○ 윈드서핑은 과학이다
원드서핑에는 자연의 오묘한 섭리가 숨겨져 있었다. “이 정도 산들바람에 배가 나가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속도가 붙었고, 거센 바람이 불어도 배가 전혀 앞으로 나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수시로 바뀌는 바람의 방향과 세일의 각도를 읽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까짓 것 대충 물에 보드 띄우고 바람 받으면 가겠지”란 상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윈드서핑 도전을 위해 방문한 이달 초순 서울 한강시민공원 망원지구엔 제법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고 있었다. 실제로 윈드서핑 하면 삼복더위의 여름이 제맛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고수들은 가을의 변화무쌍한 바람에 더 매력을 느낀단다. 기온이 섭씨 15도를 밑돌아도 한강 수온은 정오경 20도 가까이 오른다. 수온은 지상보다 한 달가량 늦게 식는다. 슈트만 입으면 수온이 10도를 밑도는 11월 말까지도 한강변 윈드서핑에 문제가 없다.
보드에 서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10번 정도 물에 빠진 뒤에야 겨우 성공했다. 고개를 넘으니 또 고개라 했던가. 바람과 조정 막대를 횡직각으로 만드는 것은 더 어려웠다. 숱한 실패를 거듭한 끝에 한순간 거짓말처럼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바람을 타는 이 느낌. 그 짜릿함을 잊을 수 없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 보드에 서기도 만만치 않아
바람이 거세 초보자들의 입수가 제한된 탓에 실습은 다음 날로 미뤄졌다. 수업 둘째 날 체온보호용 슈트를 입는 것부터 애로사항이 많았다. 요즘은 꽃미남을 넘어 미중년이 대세라던데 고백하건대 기자는 뚱청년이다. 박태환이 착용 스트레스 때문에 전신 수영복을 포기했다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다.
힘겹게 슈트를 착용한 뒤 한강에 나서자 처음엔 보드 위에 서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서는 데 성공해도 세일을 드는 순간 바람의 저항이 시작됐다. 그리고 보드는 여지없이 휙 돌아갔다. 10번 정도 물에 빠지니 바깥보다 물 안이 훨씬 따뜻했다. 안정적으로 서는 데 성공해도 바람과 보드의 각도를 90도로 맞추고 마스트(세일을 잡는 봉)를 횡직각 방향으로 조절해야 한다. 지상에서 배웠던 이론들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엉켰다. 보드는 서풍에 밀려 강 동쪽으로 점점 밀려갔다. 강사가 모터보트로 보드 구출 작전을 벌여야만 했다. 더구나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는 배가 나아갈 수 없었다. 전문 용어로 노 고 존(no go zone·바람 불어오는 방향의 좌우 45도 지역)에 빠졌기 때문. 노 고 존에 빠진 초보자들은 강에 나갔다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집 나가기는 쉬워도 돌아오긴 힘들다’는 속담이 머리를 스쳤다.
○ 산들바람에도 속도 씽씽
강의 중간으로 갈수록 속도는 높아졌다. 초보자 딱지를 떼야만 가능하다던 한강 도강이 드디어 눈앞에 다가왔다고 확신하는 찰나에 바람이 남풍으로 바뀌었다. 강 남쪽으로 가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의미. 노 고 존이다. 초보 윈드서핑족의 도강식은 원고 마감 이후로 연기됐다.
물에 빠질 용기가 있는 남녀노소 누구나 윈드서핑에 도전이 가능하다. ‘평등 과학’ 윈드서핑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한강시민공원 망원지구 백 선생을 찾아가시라. 뚱청년도 3일 만에 초보티를 벗을 수 있다. 과학은 만인에게 평등하니까.
서울 한강에서 윈드서핑을 배울 수 있는 곳은 한강시민공원 뚝섬지구와 망원지구다. 1회 2시간가량 타는 것은 장비 대여를 포함해 6만 원. 한강을 혼자 건너는 것을 목표로 하는 초보 교육 프로그램은 역시 2시간씩 4회이며 25만 원이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