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현미의 재발견”… 박사 농부의 꿈 영글다
이동현 미실란 대표가 20일 전남 곡성군 본사 뒤편 논에서 자신이 재배한 벼를 관찰하고 있다. 이 대표는 300여 종의 벼를 재배하며 ‘유기농 발아현미’의 품질을 더욱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곡성=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이 대표는 서울대 농생물학과에서 석사를 마치고 일본 문부과학성 초청 장학생으로 규슈대에서 생물자원관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박사 농부’다. 그는 2003년 귀국한 뒤 순천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여느 박사처럼 교수가 되려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하지만 실력보다 인맥 학맥 등에 좌우되는 학계에 이내 실망하게 됐고 농업에서 길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농업이 비전이 없다는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농업으로도 성공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 박사 농부의 무모한 도전
쌀을 말릴 때 생기는 ‘쪼개짐’ 현상도 없애 건조 후에도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는 기술을 개발했다. 발아할 때 발생하는 시큼한 효소냄새도 없애 밥맛을 더욱 부드럽게 했다. 이렇게 개발한 유기농 발아현미는 영양성분이 풍부하고 혈압과 혈당을 낮추고 아토피 피부염 개선 등에도 효과가 좋았다. ‘유기농 쌀농사의 대부’로 불리는 전남 보성군의 강대인 씨는 이 대표의 발아현미에 감동받아 즉석에서 7000만 원어치의 쌀을 외상으로 공급해줬다. 마침 친환경 농산물을 군의 특화사업으로 육성하려 했던 고현석 곡성군수가 그를 곡성으로 불러들였고 2006년 곡성읍의 폐교로 본사와 공장을 이전했다.
의욕 넘치게 시작한 사업은 험난했다. 고 군수는 그해 지방선거에서 낙선했고 지원을 약속한 공무원들은 ‘나 몰라라’할 뿐이었다. 애써 생산한 제품은 어떻게 팔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마케팅과 유통에는 경험이 전혀 없는 이 대표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면 저절로 잘 팔리겠지’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무작정 상품을 특급호텔과 유명 백화점에 보냈다. “특급호텔과 백화점이라면 최고 상품을 알아보고 구매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담당자 이름도 없이 보낸 상품은 대부분 반송됐죠.”
알음알음으로 알아보는 고객들에게 판매한 2006년 첫해 매출은 7800만 원. 직원들 월급 줄 돈도 없어 이 대표는 친지와 친구들에게 2억 원 가까이 빚을 져야 했다.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 선후배들은 대학과 연구소로 돌아오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 ‘한국대표 명품 식품’으로
미실란은 지난해에는 ‘기술혁신형 중소기업(Inno-Biz)’으로 지정됐고 올해부터는 농촌진흥청 작물과학원과 함께 1만3200m²(약 4000평)의 논에 300여 종의 벼를 시험재배하며 발아현미에 적합한 품종을 선정해 보급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개발한 품종을 곡성군 농협, 군지부 등과 협력해 농가소득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 대표는 조만간 발아현미와 미숫가루 등을 일본 중국 유럽 등 전 세계로 수출할 계획이다. “첫 두 해는 판로를 못 뚫어 정말 앞날이 막막했는데 많은 분의 도움으로 사람들이 제품의 진가를 알게 되면서 성장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발아현미와 미숫가루를 세계인이 찾는 대표 명품 식품으로 만들겠습니다.”
곡성=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