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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열심히 사는데 왜, 파국 다가오나

입력 | 2010-10-26 03:00:00

러시아 연극 ‘폭풍’
무대 ★★★★☆ 연기★★★★☆ 연출★★★★ 대본★★★☆




창의적 무대연출과 배우들의 물오른 연기에 힘입어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비극을 인생에 대한 보편적 희비극으로 재탄생시킨 ‘폭풍’. 사진 제공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러시아 연극의 저력은 무서웠다. 이번엔 모스크바도 아니고 상트페테르부르크도 아니었다. 러시아 우랄산맥 남쪽 마그니토고르스크란 소도시 극장(푸시킨 드라마 시어터)의 공연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디어 풍성한 무대와 밀도 넘치는 연기로 관객의 마음을 한없이 출렁이게 만들었다. 가난한 연극이 얼마나 풍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비극과 희극이 얼마나 근접해 있는지를 입증했다. 올가을 서울을 수놓고 있는 수많은 해외공연 중 단연 최고의 연극이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청작으로 21∼23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폭풍’이다.

2008년 ‘러시아의 토니상’인 황금마스크상을 수상한 이 연극의 원작은 볼가 강을 배경으로 한 알렉산드르 오스트롭스키의 사실주의 비극(1860년)이다. 곳간 열쇠를 틀어쥐고 시시콜콜한 일까지 간섭하는 시어머니, 그 어머니 말씀이라면 꼼짝 못 하는 무골호인 남편, 자유분방한 시누이, 그런 결혼생활에 질식해가던 며느리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젊고 멋진 도시사내…. TV 아침드라마의 진부한 구도를 빼닮았지만 그를 통해 러시아제국의 가치관 몰락을 담아낸 비극이다.

연출가 레프 예렌부르크는 이 스타니슬랍스키적인 사실주의 비극을 욕망에 충실한 자연과 그를 억압하는 문화의 대조를 통해 메이어홀드적인 상징주의 희비극으로 전환시켰다. 이를 성공적으로 벼려낸 무기가 창의적 무대와 관능적 몸이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무대는 2m 높이의 나무울타리로 앞뒤 공간이 나뉜다. 울타리 뒤쪽엔 물을 가득 채운 원목 수조가 숨어 있다. 울타리 앞쪽은 여주인공 까쩨리나의 집이다. 그러다 울타리 너머 수조 쪽으로 걸쳐 있던 9개의 널빤지가 반대편으로 넘어와 집을 덮으면 강둑이 되고 울타리 너머 수조는 강물이 된다. 풍덩 소리와 함께 배우가 판자 너머 강물에 빠져들 때 그 풍경은 다시 천장에 비스듬히 설치된 금속판에 반사돼 관객에게 전달된다.

시소처럼 움직이는 널빤지를 통해 2개의 대조적 공간이 구현된다. 시어머니의 말씀이 지배하는 문화공간(까쩨리나의 집)과 시누이의 성적 욕망이 분출하는 자연공간(강가)이다. 상징공간을 표상하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면서 자연공간을 상징하는 뇌우(雷雨)도 무서워하는 까쩨리나는 결국 그 두 공간에서 모두 소외된 존재다.

시소놀이는 현기증을 유발한다. 널빤지의 시소놀이를 따라 두 극단의 공간을 넘나들던 까쩨리나는 아득한 현기증을 느끼며 사랑의 광기에 빠져든다. 금지된 사랑의 전율을 참을 수 없어 차가운 강물에 몸을 던지는 그는 모든 것을 걸었던 그 사랑이 절망이 되는 순간 다시 강물에 몸을 던진다.

희극적이면서도 관능적인 몸의 연기도 압권이다. 11명의 배우는 주·조연 가릴 것 없이 놀라운 몸의 향연을 펼쳐냈다. 술꾼의 나라답게 보드카에 만취한 사내들이 횡설수설하는 장면에선 실제 취기가 다 느껴질 정도였고 강변에서 연인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선 곡예에 가까운 육감적 몸놀림으로 숨 막히는 관능미를 표현했다.

몸은 말로 걸러낼 수 없는 현실을 통째로 포획하는 그물이 된다. 뚱뚱한 하녀는 언감생심 주인의 사랑을 얻겠다며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과자를 쑤셔 넣고 자신의 체취를 배게 한답시고 펄쩍펄쩍 뛴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순간 여인은 쏟아지는 잠을 못 이겨 코를 골고 웃통을 벗어던진 사내는 모기떼에 물리지 않으려 용을 쓴다. 정조를 목숨처럼 지키겠다던 맹세를 저버린 까쩨리나는 출장 갔다 돌아온 남편을 볼 면목이 없어 젖은 빨래에 얼굴을 처박고 무언의 절규를 토해낸다.

선악의 대결구도가 뚜렷한 아침드라마와 달리 이 연극에는 어떤 악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저마다 최선을 다해 살지만 비극적 파국을 피할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이란 통찰이 그를 대신한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애절한 선율이 어우러져 더욱 진한 슬픔을 안겨주는 배경음악이 그토록 긴 여운을 남긴 이유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