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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한국 프로복싱 사상 최고의 선수는 누구?

입력 | 2010-10-27 11:11:43


김기수, 홍수환, 염동균, 박종팔, 김태식, 유명우, 장정구, 문성길….

복싱 팬이라면 한번 쯤 들어봤을 한국복싱의 세계챔피언들이다.

1966년 김기수가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 미들급 타이틀을 따내며 첫 세계 챔피언이 된 뒤 한국복싱은 WBA에서 16명, 세계복싱평의회(WBC)에서 11명의 세계 챔피언을 탄생시켰다.

이중 최고의 선수는 누구일까.

최초의 세계 챔피언 김기수? 최다방어의 유명우? 20세기 최고의 복서 중 한명으로 선정된 장정구? 아니면 두 번 외국에서 타이틀을 획득한 홍수환?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분분하지만 스피드와 테크닉에 관한한 최고의 선수로 WBC 플라이급 챔피언을 지낸 박찬희(52)가 첫손에 꼽힌다.

박찬희(오른쪽)의 경기 모습.

박찬희는 한국복싱의 황금기였던 1970년대 말 최고의 스포츠스타로 각광을 받았다.

박찬희는 아마추어 때부터 스타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린 뒤 프로복싱에서도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의 아마추어 전적은 127전 125승 2패.

국가대표로 1974년 테헤란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1976년 킹스컵에서는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그는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낼 것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 출전한 박찬희는 초반 KO 퍼레이드를 벌이며 8강에 올랐다.

8강전 상대는 당시 아마추어복싱 최강국인 쿠바의 영웅 에르난데스. 사실상의 결승전이었던 이 경기에서 박찬희는 치열한 접전 끝에 2-3으로 판정패를 당했다. 하지만 경기 내용에서는 분명히 박찬희가 이겼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

이렇게 아마추어에서 세계 최고의 실력을 보였던 박찬희는 1977년 프로에 데뷔해 1년 만에 11전 전승(5KO)을 거둔 뒤 '링의 대학교수'로 불렸던 멕시코의 미구엘 칸토에게 WBC 플라이급 챔피언 도전장을 내밀었다.

박찬희는 칸토와의 경기에서 복싱 기술의 진수를 펼쳐 보이며 명승부 끝에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하지만 박찬희는 6차 방어전에서 일본의 오쿠마 쇼지에게 패해 타이틀을 빼앗겼다.

모랄레스를 몰아부친 뒤 강타를 퍼붓는 박찬희(왼쪽).


전성기의 그가 쇼지에게 패한 것은 너무 혹사당한 게 원인으로 꼽힌다. 당시 최고의 흥행복서였던 박찬희는 세계 챔피언이 된 후 2개월에 한번 씩 링에 올라야 했다. 14개월 동안 무려 7차례의 타이틀 매치를 치렀으니, 세계 최고의 테크닉과 스피드가 체력 저하로 무용지물이 된 것.

박찬희는 요즘 장례사업을 하고 있는데, 2008년 경기 후 사망한 최요삼을 위해 납골당을 제공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복싱의 황금시절과 최고의 테크니션 박찬희를 떠올린 이유는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종합 격투기에 무모한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씨름선수를 비롯해 이제는 개그맨까지 격투기에 나서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종합 격투기를 하려면 기본을 갖춰야 하고, 기본이 되는 것은 권투라는 사실이다.

타격과 그라운드 기술이 복합적으로 사용되는 게 종합 격투기이기는 하지만, 권투를 기본기로 연마한 뒤 여기에 그라운드 기술을 배워 격투기에 도전하는 게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이 견해다.

어쨌든 막강한 타격 기술을 갖춘 외국의 세계적인 복싱 스타들은 좀처럼 격투기 선수로 전환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복싱에서 챔피언으로 버는 돈이 격투기에서 최고 스타들이 버는 것보다 몇 배 내지는 수십 배가 되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아직도 프로복싱이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증거다. 또한 30~40년 전 국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프로복싱이 다시 살아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