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
낙지는 뭐니 뭐니 해도 ‘뻘낙지’가 으뜸이다. 뻘 세발낙지는 ‘뻘밭의 산삼’이다. 주낙이나 통발로 잡은 큰 낙지 열 점과 뻘에서 손으로 잡은 세발낙지 한 점을 바꾸지 않는다. 큰 낙지는 주로 매콤한 낙지볶음에 들어간다. 중간크기 낙지는 이른바 ‘탕탕이’로 많이 쓴다. 칼로 낙지 다리를 탕! 탕! 잘라서 먹는 것을 말한다.
뻘낙지는 봄가을에만 잡는다. 여름겨울 낙지는 갯벌 한참 앞쪽바다에서 산다. 봄낙지는 알을 낳으러 뻘밭에 온다. 여기저기 구멍을 뚫지 않는다. 다소곳이 알 낳기 좋은 한 구멍에 들어앉아 몸을 푼다. 그만큼 잡기도 쉽다. 하지만 숫자가 많지 않다.
가을 갯벌은 세발낙지들의 놀이동산이다. 손가락만 한 칠게나 작은 조개들을 잡아먹으러 온 갯벌을 헤집고 다닌다. 천둥벌거숭이도 그런 벌거숭이가 없다. 가을 세발낙지는 천하장사다.
세발낙지는 다리가 3개가 아니다. 가늘 ‘세(細)’자의 세발이다. 다리가 가늘고, 머리통이 작다. 뻘밭을 미꾸라지처럼 요동치고 다닌다. 살이 부드러워 달고 고소하다.
세발낙지는 사는 곳에 따라 색깔과 모양이 다르다. 중국산 세발낙지는 국산에 비해 다리가 굵다. 머리도 크다. 대륙적이다. 빨판도 툭 튀어나와 있다. 피부가 탄력이 없다. 바다 건너오느라 비실비실하다(기절낙지). 흔히 낙지볶음 집에서 먹는 낙지와 모양이 비슷하면 중국산 세발낙지라고 보면 된다. 매콤한 낙지볶음 집 낙지는 대부분 중국산 큰 낙지를 쓰기 때문이다.
국산 낙지는 머리가 미끈하다. 다리가 가늘고 각선미가 있다. 빨판이 손에 척척 달라붙을 정도로 기운차다. 국산 중에서도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잡힌 것이 다르다. 같은 서해안이라도 전남 무안과 인천 강화섬 혹은 충남 태안 갯벌에서 잡힌 것이 약간씩 다르다. 낙지나 사람이나 자기가 태어나 살고 있는 땅을 닮는다.
낙지볶음은 타이밍이다. 살짝 데친 낙지를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오래 볶으면 질기고, 너무 짧으면 푸석한 맛이 난다. 고춧가루가 좋고 낙지가 좋아야 볶음색깔이 예쁘게 나온다. 낙지볶음은 고춧가루 옷을 잘 입어야 맛있다. 물 많은 낙지는 양념이 배지 않아 따로 논다. 처음엔 센 불로, 그 다음엔 약한 불로 볶는다.
중국산과 국산 낙지를 보통 사람들이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나란히 있으면 몰라도 따로따로 놓여 있으면 전문가도 가려내기 어렵다. 결국 바닷바람도 쏘일 겸 산지에 가서 직접 먹으면 해결된다. 낙지는 갯벌을 닮는다. 갯벌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낙지도 아무 이상 없다. 천일염 만드는 갯벌이라면 두말 할 필요 없다. 뭐가 무서워 가을별미인 낙지를 못 먹는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반들반들한 낙지 머리는 머리가 아니라 몸통이다. 그 몸통에 간, 위장, 신장, 아가미, 생식기까지 몽땅 들어있다. 먹물주머니는 간 뒤쪽에 붙어 있다. 한마디로 낙지 먹물과 낙지 내장은 몸통에 있다고 보면 된다. 낙지 머리(뇌)는 몸통과 8개의 팔 사이에 있다. 두 개의 눈이 바로 이곳에 붙어 있다.
세발낙지는 산 낙지로만 먹는 게 아니다. 낙지구이 낙지산적 낙지회 낙지전골 낙지볶음 연포탕 철판낙지 등 많다. 전남 무안에 가면 낙지호롱구이도 있다. 세발낙지를 나무젓가락에 돌돌 만 뒤, 매콤새콤한 양념장을 발라 구운 것이다. 살살 풀면서 먹는 맛이 그만이다.
낙지요리는 양념을 많이 하지 않아야 담백하고 개운한 맛을 살릴 수 있다. 연포탕은 무 박속 미나리 양파 마늘 등을 넣고 푹 끓인 국물에 살아있는 세발낙지를 넣어 살짝 데치면 된다. 마지막에 실파와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넣으면 국물이 더 시원하다. 오돌오돌 씹히는 맛이 좋다. 낙지는 오래 끓이면 질기다. 살짝 익혀서 통통하고 연할 때 먹는 게 맛있다.
산 낙지는 소금물에 씻으면 비린 맛이 많이 난다. 손으로만 죽죽 훑어낸 후 먹는 게 좋다. 달착지근하고 오돌거리는 맛. 씹을수록 달고 쫄깃쫄깃하다. 역시 세발낙지는 ‘손으로 훑어먹는 맛’이 으뜸이다.
가을 낙지는 힘이 세다. 입천장에 낙지 빨판이 한 번 달라붙으면 떼기 힘들다. 입안 벽에도 사정없이 들러붙는다. 입천장이 아릿하다. 입천장 끝 코 들머리가 막힐 수도 있다. 콧구멍이 뻘구멍인 줄 알고 파고든다. 캑캑거린다. 그래서 산낙지는 머리부터 먹어야 한다. 다리부터 먹다간 숨 막히기 십상이다.
‘씹을 때마다 용수철처럼 경쾌하게 이빨을 튕겨내는 탄력. 꿈틀거림과 짓이겨짐 사이에 살아있는 죽음과 죽어 있는 삶이 샌드위치처럼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는 탄력. 한 번에 다 죽지 않고 여러 번 촘촘하게 나누어진 죽음의 푹신푹신한 탄력. 다 짓이겨지고 나도 꿈틀거림의 울림이 여전히 턱관절에 남아있는 탄력.’ <김기택 ‘산 낙지 먹기’에서>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