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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이산가족 상봉]상봉 행사 이모저모

입력 | 2010-11-01 03:00:00

딸 만난 96세 노모 “널 보려 오래 살았나보다”




지난해 10월 이후 12개월 만에 다시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서 참석자들은 60여 년 만에 혈육의 정을 나눴다. 지난달 30일 첫 상봉에서 오열하느라 할 말을 못다 한 가족들은 31일 개별상봉에서는 한결 진정된 표정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남측 최고령자인 김례정 씨(96·여)는 지난달 30일 오후 단체상봉에서 북측 딸 우정혜 씨(71)를 만났다. 김 씨는 정혜 씨를 보고 “너를 어떻게…꿈에서만 보고…”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정혜 씨는 “한시도 어머니를 잊은 적이 없다”며 큰절을 올렸고 김 씨는 “내가 너를 보려고 지금까지 살았나 보다”라고 말했다.

오빠 우영식 씨는 “고맙다. 우리를 찾아주어서…”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 씨는 6·25전쟁으로 서울이 점령당한 뒤 영식 씨와 정혜, 덕혜 씨(69) 등 남매를 친할아버지가 있는 황해도 연백으로 피란 보냈다. 그러다 1951년 1·4후퇴 때 영식 씨만 남으로 내려오고 정혜 씨는 그곳에 남은 것. 영식 씨는 연백을 떠날 때 자신을 뒤따르던 여동생에게 “금방 다녀올게”라며 등을 돌린 것이 내내 한이었다고 말했다. 정혜 씨와 함께 북측에 남은 덕혜 씨도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씨가 전쟁 종료 후 낳은 아들인 우원식 전 민주당 국회의원(53)은 “노환으로 바깥출입이 불편하신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상봉장에 오셨다”고 말했다.

정혜 씨는 어머니는 돌아가셨을 것으로 여기고 오빠를 찾기 위해 상봉신청을 했다가 어머니를 만나 상봉의 꿈을 이뤘다. 정혜 씨는 북측에서 잘살고 있다는 점을 알리려는 듯 훈장과 상장, 상품 등을 챙겨왔다.

○…6·25전쟁 당시 세 살이던 남측 고배일 씨(62)는 31일 오전 북측의 아버지 고윤섭 씨(81)와 개별상봉을 마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인 것 같은데 저승에서 영혼으로 만나면 아버님을 꼭 붙잡고 놓아드리지 않겠다”며 흐느꼈다. 고윤섭 씨도 울먹이며 “꼭 그러자”고 화답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고배일 씨는 “아버지께서 치아가 없어 음식을 잘 못 드셨는데 미국으로 같이 갈 수 있다면 치아를 다 해드릴 수 있을 텐데…”라며 취재진 앞에서 한동안 오열했다.

○…31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개별상봉에서 북측 오빠 정기형 씨(79)는 남측에서 온 세 여동생 기영(72) 기옥(62) 기연 씨(58)의 큰절을 받았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동생들은 전쟁 때 아버지 대신 북측으로 맨발로 끌려간 오빠에게 “모진 고생을 하게 해 미안하고 고맙다”며 오빠에게 양복과 구두 네 켤레를 선물했다. 정 씨는 고향인 경기 안성에 인민군이 내려와 아버지를 일꾼으로 끌고 가려 하자 “집안의 기둥인 아버지가 가면 안 된다”며 아버지 대신 길을 나섰다.

○…6·25전쟁 당시 죽은 줄로만 알았던 북측 언니 송완섭 씨(78)를 60년 만에 만난 남측 여동생 송미섭 씨(74)는 선물로 구식 태엽시계 5개를 준비했다. 송미섭 씨는 “전자시계는 2, 3년마다 건전지를 갈아야 하지만 태엽시계는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서울 시내 시계방을 다 뒤졌지만 못 구해 특별 주문제작을 했다”고 말했다.

○…31일 오후 공동상봉에서는 서로 다른 가족으로 이번 행사에 참가했던 8촌 형제가 만나는 기쁨을 안았다. 북측 사촌 여동생을 만나러 온 남측 김운한 씨(88)는 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 1층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서 북측 김제국 씨(83)가 어릴 적 고향 경북 영주에서 헤어진 8촌 동생임을 알아보고 부둥켜안았다.

○…31일 오후 금강산호텔 2층 식당에서 열린 공동오찬에서는 동생을 만나러 온 북측 이창식 씨(80)와 아들 이경렬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향의 봄’과 ‘반갑습니다’ 등의 노래를 불렀다. 북측 양강도 지역에서 가수 겸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경렬 씨는 “다 함께 부르자”며 분위기를 띄웠고 다른 가족들도 노래와 박수로 화답하면서 흥겨운 분위기가 연출됐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