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브라질, 룰라가 이겼다

‘남미(南美)의 맏형’ 브라질에서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집권 노동당의 지우마 호세프 당선자는 8년 임기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에 이어 내년 1월 공식 취임한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넓은 국토 면적과 약 2억 명의 인구, 풍부한 천연자원을 지녔다. ‘브라질의 대처’란 별명을 지닌 호세프를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호세프는 2003년 출범한 룰라 행정부에서 연방정부 에너지장관과 수석장관을 거치면서 룰라의 신임을 받았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반(反)정부 무장투쟁조직에 가담해 3년간 투옥된 경험도 있다.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와 연방정부에서 임명직 공직을 두루 거쳤지만 선거 출마나 당직을 맡은 적은 없었다. 대중적 지명도가 낮았던 호세프가 승리를 거머쥔 결정적 요인은 퇴임을 앞두고도 80% 이상 지지율을 보인 현직 대통령 룰라의 전폭적 지원이었다. 호세프의 승리는 곧 룰라의 승리라고 할 만하다.

▷노동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룰라가 2002년 10월 대선에서 승리하자 조지 소로스는 브라질의 국가부도 가능성을 점쳤다. 그러나 ‘대통령 룰라’는 사회적 약자를 챙기면서도 국내외 기업의 투자의욕을 북돋는 실용 정책을 추진했다. ‘날지 못하는 닭’이란 말을 듣던 브라질 경제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연평균 5% 가깝게 성장했다. 올해 성장률은 24년 만에 가장 높은 7%대 초반으로 예상된다. 브라질의 국내총생산(GDP)은 2005년 한국을 제치고 세계 12위로 올라섰고 지금은 세계 8위다.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여름올림픽 유치, 국제무대에서의 활발한 외교 행보도 국민의 자부심을 높였다. 좌파 정치인도 룰라처럼만 하면 박수를 받을 만하다.

▷지난해 수교 50년을 맞은 한-브라질 관계는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LG전자 삼성전자 포스코는 브라질에서 뿌리를 내렸고 현대자동차 동국제강 효성은 현지 공장을 건설 또는 계획 중이다. 한국에 호감을 가진 룰라는 이달 11, 12일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에 호세프와 함께 참석할 예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 룰라는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해외순방이고 호세프는 정상외교 데뷔 무대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