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애장면 나올때마다 부르르 떨고 빙글빙글 도는 관객 의자감정이입 방해하는 황당함이란…
《‘3차원(3D)으로 성애장면을 보면 얼마나 흥분될까.’ 영화 ‘나탈리’(10월 28일 개봉·청소년 관람불가)에 대해 궁금한 딱 한 가지였다. ‘국내 최초로 3D로 촬영한 멜로영화’란 홍보문구에 후끈 달아오른 나는 이 영화가 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4D로 상영된단 소식을 듣고 바람처럼 달려갔다. 4D란 3D를 넘어 좌석이 흔들리거나 물줄기가 살짝 뿜어져 나오는 등 오감(五感)을 총체적으로 자극하는 상영시스템. 야하다고(정확하게 말하자면 ‘야하기만 하다고’) 소문난 나탈리를 부르르 떨리는 특수의자에 앉아 손에 잡힐 듯한 입체효과로 본다고 상상하니 상영 전부터 새신랑처럼 설렜다.》
3차원(3D) 입체효과에 더해 촉감을 자극하는 4D 상영으로 최근 개봉된 멜로영화 ‘나탈리’. 사진 제공 영화인
영화가 시작됐다. 오호, 처음부터 노골적인 정사장면. 감독의 단도직입적인 태도가 마음에 쏙 든다. 여체를 3D 카메라로 샅샅이 훑는 순간 두 개의 가슴과 그 사이에 파인 골이 마치 산악영화를 보는 듯한 굉장한 스펙터클을 만들어냈다. 아, 그런데 웬일인가. 순간 내가 앉은 의자가 시계 반대방향으로 빙빙 도는 게 아닌가. 몇 번을 돌던 의자는 다시 ‘두두두두’ 소리를 내며 안마의자처럼 떨어대기 시작했다. 남자가 여자의 뒤에서 애무를 하든 앞에서 하든, 다리를 쓰다듬든 의자는 한 방향으로 돌았다가 반대방향으로 돌기만을 초지일관 반복했다. 관객이 무료해질 타이밍에선 두두두두 떨기만 했다. 배우들이 시도하는 다양한 체위나 테크닉과 어떤 개연성을 갖지 못한 채 의자가 작동하다 보니 체감도는 확 떨어졌다.
하지만 즐거움은 거기까지였다. 배우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창의적인 체위와 테크닉을 보였지만, 정작 관객이 앉은 의자는 ‘스마트’하지 못했다. 시계방향으로 돌거나, 그 반대방향으로 돌거나, 부르르르 떨리거나, 앞뒤로 왔다 갔다 하거나, 뒤로 화들짝 자빠지거나 하는 5가지 움직임 외에는 어떤 자극도 선물하지 못했다. 이런 개연성 없는 움직임이 서너 번째 성애장면까지 계속되자 자극도는 반감되기 시작했다. 베드신에 이르면 상영관 내 전 좌석과 관객들이 일제히 빙글빙글 도는 광경의 겸연쩍음과 우스꽝스러움이란, 직접 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할 수 없으리라!
영화를 보는 내내 의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성애장면에 굳이 의자가 미친 듯이 떨리는 촉감자극이 필요한 걸까? 지구 표면이 쩍쩍 갈라지는 대재앙을 그린 영화도 아니고 한 평도 안 되는 침대 위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떨림을 꼭 이런 의자의 유치한 떨림으로 증폭시킬 필요가 있을까?
더 근원적인 문제는, 의자의 오두방정 때문에 오히려 성애장면의 흥분도가 반감된다는 사실이었다. 한창 남자배우에게 감정을 이입해 즐거운 순간을 간접 체험하려던 나는, 갑자기 떨어대는 의자에 화들짝 놀라며 몰입에서 확 깨는 소격(疏隔)효과를 경험할 뿐이었다. 극작가 브레히트가 주장한 소격효과(관객이 배우의 연기에 몰입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현실을 환기시키는 효과)를 노린 게 아니라면, 4D는 성애장면의 흥분을 전달하기엔 부작용이 더 많은 시스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나탈리를 보면서 축 처진 중년의 기력을 회복할 만한 새로운 자극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만고불변의 진리에 도달하였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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