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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소통]세계적 개념미술가 가브리엘 오로스코 씨 한국 첫 개인전

입력 | 2010-11-02 03:00:00

삶은 우연인데 같은 길만 갈 수 있나




가브리엘 오로스코 씨의 설치작품 ‘작업 테이블의 세부’. 2008년 멕시코 사막을 여행하며 그가 수집한 선인장 줄기와 뿌리 등 자질구레한 물건을 배열한 작품이다. 사진 제공 PKM 트리니티갤러리

서울 강남구 청담동 PKM트리니티 갤러리의 바닥에는 선인장 조각, 화산암, 벽돌, 씨앗, 유리병 등이 가지런하게 놓여있다. 얼핏 잡동사니 같아 보이는 이질적 물건이 한자리에 어우러지면서 어엿한 예술작품으로 승격됐다. 이들은 작가가 멕시코 사막에서 가져온 수집품이자 일종의 스케치, 작품으로 진화 중인 과정에 있는 오브제다.

이는 멕시코 출신 세계적 개념미술가 가브리엘 오로스코 씨(48·사진)의 ‘작업테이블의 세부’라는 설치작품. 사막에서 주워 온 물건을 단순 배열한 작업이지만 제목 그대로 작품을 구상 중인 작가의 작업실과 사유의 편린을 살짝 들여다보는 듯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일상의 소소한 오브제와 경험을 예술의 영토 속으로 끌어내온 작가가 국내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있다. 폭넓은 재료와 매체를 통해 개념과 감성, 체험과 사유가 적절히 균형을 이룬 작품을 발표해 세계 미술계가 뜨거운 관심을 보내는 작가다. 이 전시를 마련한 박경미 PKM 대표는 “국내에서는 그의 작품을 제대로 선보인 적이 없지만 국제 평단과 시장에서 공히 대가의 반열에 오른 것으로 인정받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30일까지. 02-515-9496

○ 고정된 틀을 벗어나다

이번 전시는 회화 사진 설치 조각 드로잉 등 50여 점을 통해 최근 작업경향을 두루 짚어볼 수 있는 자리다. 4가지 색상의 원과 부채꼴이 체스 판의 기사(knight)처럼 규칙적으로 이동하는 이미지를 담은 대작 회화부터 작은 드로잉, 산업용 소재인 폴리우레탄을 사용한 유기체적 입체, 유화 물감을 종이에 떨어뜨린 뒤 접은 ‘데플리아주’, 축구경기 사진 프린트에 기하학적 도형을 그린 작품 등이 넓은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전시 개막에 맞춰 내한한 작가는 “지난 5년간 해온 다양한 성격과 규모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라며 “평소 여러 매체의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며 사진과 회화, 회화와 조각, 드로잉과 설치 등 같이 맞물려 이뤄지는 작품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멕시코와 스페인에서 미술공부를 한 뒤 1997년 카셀 도큐멘타, 2003년과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등에 참가했다. 지난해 말에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대형 회고전을 열었고 이 전시는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거쳐 내년 초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삶이 변화무쌍하듯 특정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오로스코 작업의 묘미다. “나는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는 사람은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나는 사람들이 예상 가능한 길을 벗어나고 편견을 깨는 작업을 해왔다. 어떤 스타일을 갖는 것은 스스로 한계를 만드는 것이며 나는 그런 벽을 깨고자 한다.”

○ 삶은 우연의 연속이다

작가 몸의 감각을 활용한 작품은 놀이처럼 단순하면서도 흥미롭다. 눈을 감은 채 종이에 선을 그려 완성한 ‘숨쉬는 드로잉’, 찰흙 덩어리로 완성한 입체작품 ‘토르소, 골반, 머리’ 등이 그들. 호흡에 따라 분필에 가해지는 압력이 달라지는 드로잉은 ‘작고 간단한 표현으로 신체 감각 회로를 극대화한 작품’이란 평을 받았다. 추상적이면서도 인체의 일부분과 닮은 입체 작품의 경우 만드는 과정이 작품 안에 기록돼 독특한 울림을 준다.

한 장르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 작업에 도전하는 작가. 뉴욕에 거주하면서도 고정된 작업실을 두지 않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만난 오브제와 소소한 풍경을 테마로 삼아 왔다. “인생은 끊임없는 변화”라고 믿는 철학이 담긴 작업 방식이다.

안정된 삶은 우연적 결과이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수용할 수 있도록 자신을 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작가. 스타일도 소재도 제각각이라 한데 묶기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평범한 재료와 단순한 개입을 바탕으로 사물과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혀주는 신통력을 발휘한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