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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순덕]反엘리트주의

입력 | 2010-11-03 03:00:00


“우리 정치가 이렇게 험악한 이유는, 또 사실이나 과학이, 논리에 입각한 주장이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두려움에 빠져 생각을 명확히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중간선거 유세 중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이 발언은 즉각 설화(舌禍)를 일으켰다. 복잡한 문장을 짧게 요약하면 ‘우리 당이 죽 쑤는 건 유권자들이 뭘 모르기 때문’이라는 불평이다. 대통령과 민주당만 잘났고, 보통사람들은 우중(愚衆)이란 말이냐는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오바마의 ‘큰 정부’에 반대하는 보수주의운동 ‘티파티’ 사람들은 미국이 뉴엘리트(New Elite)에 탈취당했다고 주장한다. 과거에도 동부지역 명문가의 명문대 출신이 정치를 주름잡은 건 사실이지만 오바마로 대표되는 뉴엘리트는 좀 다르다. 최고의 명문대를 나와 탁월한 능력이나 노력을 바탕으로 전문직종에서 성공했다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보통사람들은 더 기분 나쁜 거다. 과거처럼 ‘저 사람은 부모 잘 만나 성공했겠거니’ 할 수가 없어지면서 이젠 시스템이 아닌 자신의 게으름이나 잘못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엔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말해주듯이 보통사람들의 위대함을 좋아하고 또 믿고 싶어 하는 반지성주의 전통이 있기는 하다. 서민의 아픔을 모르고 대중과 동떨어져 있으면서 교수처럼 국민을 가르치려 드는 대통령에게 백인 노동계층 남성들부터 대거 등을 돌렸다. 국민을 아래로 보는 대통령은 엘리트 의식에 빠진 엘리트주의자(Elitist)이고, 엘리트가 우중을 지배해야 한다고 믿는 엘리트 지배주의(Elitism)에 사로잡혀 있다는 논란이 매체마다 일어났다.

▷11·2 미국 중간선거는 반엘리트주의의 승리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반엘리트주의가 꼭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줄 순 있을 것 같다. 엘리트가 진정한 엘리트로 남으려면 결코 잘난 척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하긴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이미 ‘가난한 출신’을 내걸고 ‘서민 마케팅’을 시작한 터다. 보통사람들도 기억할 교훈이 하나 더 있다. 한때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했던 바로 그 점이 나중엔 정 떨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오바마의 쿨한 지성이 그랬던 것처럼.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