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아란(왼쪽)과 장혜지는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코트를 누볐던 단짝이다. 그러나 2일 신인 드래프트에서 명암이 엇갈렸다.사진 제공 한국여자농구연맹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뜨거웠던 2002년 여름 어느 날. 학교 체육관에서 처음 만난 두 아이는 눈빛이 교차하는 순간 운명 같은 무언가를 느꼈다. “이 친구와는 앞으로 부딪칠 일이 많겠구나.”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홍아란(18)과 장혜지(18). 성격은 달랐다. 아란이는 ‘까불이’로 불릴 만큼 외향적이었지만 혜지는 낯을 많이 가리고 말수도 적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잘 통했다. 가족에게 말하기 불편한 얘기도 친구에게 얘기하면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농구 코트에서도 둘은 찰떡 콤비였다. 함께 코트에 나서면 눈빛만 봐도 통했고 무서울 것이 없었다.
이들은 고등학교도 같은 곳을 선택했다. 경남 사천에 있는 삼천포여고에서 최강 콤비로 이름을 날렸다. 둘이 3학년이 됐을 때 후배들은 시원시원한 카리스마가 있는 아란이를 ‘아빠’, 다정다감한 세심함이 돋보인 혜지를 ‘엄마’로 불렀다. 삼천포여고는 가족같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전국 대회 우승컵까지 들어 올리며 명문 반열에 올랐다.
위기도 있었다. 3학년 때 어느 날 아란이가 골반을 크게 다쳤다. 농구 인생을 위협할 만큼 큰 부상. 다행히 아란이 곁엔 단짝이 있었다. 혜지가 자기 몸처럼 아파하며 항상 곁에 있어 준 덕분에 아란이는 자기와의 싸움이 외롭지 않았다.
2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위치한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의 그랜드볼룸. 2011년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신입선수 선발회에 참석한 이들은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전날 밤 둘은 긴장된 마음에 한숨도 못 잤다. 서로 “너는 잘될 거야”라는 말을 건네며 밤새 지금까지 함께 농구했던 시절을 추억했다.
희비는 엇갈렸다. ‘홍아란’이란 이름은 2라운드에서 불렸지만 장혜지는 없었다. 실업 팀 입단은 가능하지만 꿈꾸던 프로 팀 지명을 받지 못한 혜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옆에 앉은 아란이는 아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친구에 대한 미안함과 이제 함께 같은 장소에서 농구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뒤섞여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이런 친구의 모습을 본 혜지가 오히려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난 괜찮아. 정말 축하해.”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