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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들의 사진사랑 이야기]첼리스트 양성원 교수

입력 | 2010-11-05 03:00:00

“나와 음악 사이 사진이 있고… 사진 속에 세상이 있네”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다 일곱 살 무렵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간 콘서트에서 첼로 거장 야노시 슈터르케르의 연주를 듣고서 첼리스트를 꿈꾸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프랑스로 온 가족이 이민을 떠나 프랑스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 입학했고 19세의 나이에 미국 인디애나 주립대 대학원에서 슈터르케르를 사사했다.

스승과 만났을 때 “일곱 살 때 처음 들은 연주가 당신이었고, 그 소리에 감동받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하자 슈터르케르는 “첫 번째로 들은 연주자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다”라며 제자를 반겨 주었다. 국내 최정상급 첼로 연주자로 꼽히며 현재 연세대 기악과 교수로 재직 중인 첼리스트 양성원 씨(43·사진)에 대한 얘기다.

그의 집안은 음악 가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원로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버지 양해엽 전 서울대 교수의 피를 이어 받았고 4남매 중 형은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 씨다. 아내 역시 바이올리니스트 김은식 씨다.

만약 바흐와 동시대에 살았다면 바흐처럼 음악만 하고 살고 싶다며 늘 첼로에 빠져 사는 사람. 녹음이나 수업이 없더라도 오전, 오후 하루에 네 시간은 반드시 첼로를 연주하며 늘 음악을 끼고 사는 사람. 그런 그가 사진을 맵시나게 찍는다기에 인생에 오직 음악밖에 없을 것 같은 첼리스트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로 존재할까 궁금했다.》 
―그렇게 음악 때문에 바삐 사시면 사진 찍을 시간이 있나요.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나가진 않습니다. 저는 연주를 위해 여러 나라를 가게 되는데 그럴 때 카메라를 늘 가지고 다니며 틈날 때 찍습니다. 사실 연주자들은 커다란 악기에 연미복에 악보까지 짐이 많아 카메라를 챙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진은 저에게 다양한 삶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주고 있어 카메라를 꼭 챙기는 편입니다.”

―본인의 음악은 사진과 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연주자는 청각에 의존합니다. 그렇다 보니 청각만 발달하거나 청각이 혹사당하는 느낌이 듭니다. 음악을 하지 않는 나머지 시간에는 일부러 많이 느슨해집니다. 이럴 때 주로 야외에 있으면 사진을, 집에 있으면 요리를 즐깁니다. 이런 취미는 시각과 후각, 미각을 발달시켜 연주자로서 오감의 균형을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제가 그렇다고 일부러 시각 발달을 위해 사진을 한 것은 아니고 어릴 때부터 주변에 카메라가 있었기에 자연스레 취미가 되었습니다.”

푸른색이 감도는 핀란드 투르쿠 지방의 설경. 2010년 2월 양성원 촬영.


―사진 찍고자 하는 흥미로운 대상이 많나요.

“굳이 장르를 가리진 않지만 풍경, 가족, 와인, 음악 관련 등 제가 흥미로워하는 것들이 사진 찍기 대상이 됩니다.”

―그런 사진들이 인생에서 어떻게 연결고리 역할을 하나요.

“음악 페스티벌이나 연주회는 각 나라의 대도시뿐만 아니라 조그만 도시에서도 열리기 때문에 처음 가 본 곳이거나 성당과 같은 특별한 장소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때마다 연주회장이나 그곳의 특이한 풍경이 멋있어 저절로 사진을 찍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제가 갔다 온 곳의 사진들을 보여주면 그곳이 어디냐, 가보고 싶다라고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계기가 됩니다.

저는 관심 가지는 부분을 세세하게 사진으로 기록하는 스타일입니다. 프랑스에 오래 살다 보니 와인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틈이 나면 프랑스의 여러 포도농장을 다니면서 그곳의 포도, 토양, 수확, 숙성에 이르기까지 사진으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런 사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와인도 마시고 얘기도 나누면 와인이 어떠한 생명체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음악과 관련해서는 제가 전공하는 첼로와 활을 만드는 장인을 만나 그의 작업공정을 하나하나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이는 첼로 소리를 원천적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첼로는 연주 자세가 악기를 온몸으로 껴안다시피 하잖아요. 연주 시에 내 첼로와 교감하는 데 좋은 밑바탕이 됩니다. 이처럼 사진은 내가 원하는 것과 연결되게끔 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가족 사진도 꾸준히 찍는 편입니다. 식구들 사진 찍기는 가족 사랑의 한 방법이고 나중에 좋은 인생사로 남겠죠.”

그는 국내에서 알아주는 첼로 연주자이자 사진도 찍을 줄 아는 사람이다. 소리와 이미지를 누구보다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어 그런 부분에 대해 세세하게 물었다.

―사진은 이미지고 음악은 소리입니다. 음악을 사진으로 푼다면….

“사진가들도 나름의 시각언어가 있듯이 음악가들도 자신의 소리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음악가가 자신의 곡을 만들 때 베토벤이 신(God)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존경심을, 슈만은 문학에서 시처럼 풀어낸 느낌입니다. 반면에 브람스와 드보르자크는 그림처럼 그렸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따라서 브람스와 드보르자크는 시각적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사진과도 가깝다고 봅니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깊고 단단하고 순수해 흑백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내면에서 풍기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런 작곡가들의 음악을 들으면 이미지가 더 쉽게 연상됩니다.”

―거꾸로 사진을 음악으로 풀어본다면 어떨까요.

“사진이나 그림 즉 시각은 아방가르드적이고 청각은 보수적입니다. 미술을 통한 감동은 음악보다 훨씬 직접적이고요. 르네상스나 인상파와 같은 사조를 보더라도 미술이 음악보다 시기가 훨씬 앞서는데 이는 청각이 시각보다 새로운 것을 흡수하는 데 훨씬 더디다는 걸 나타내지요. 예를 들어 대표적인 인상파 작곡가인 드뷔시의 ‘바다’를 듣고 동시대 인상파 화가의 그림을 보았을 때 미술작품이 훨씬 익숙하게 느껴지는 걸 알게 되실 거예요. 배병우 선생님의 소나무 작품을 상상해 보세요. 저마다 조금씩 다른 각도로 휘어진 나무들의 집합체에서 음악적 리듬을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나무들의 간격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흐름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바로 음악의 흐름과 일치합니다. 그런 소나무 이미지가 베토벤 소나타와 변주곡 전곡을 연주하고 녹음하는 동안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음반이 나왔을 때 표지와 속지를 제 모습 대신 배병우 선생님의 소나무 사진으로 선택했을 정도였습니다.”

―사진을 하면서 나만이 느낀 점이 있다면….

변화무쌍한 알프스의 운해. 프랑스 쿠르슈벨. 2009년.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면 나라마다 자연환경이나 색채들이 우리와 조금씩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핀란드에서 백야 상태에서 설경을 보았더니 하얀 눈이 진짜 서양인의 파란 눈처럼 파랬습니다. 그런 파란색이 15분 정도 가더라고요. 거기 사람들은 그때를 블루 모멘트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알프스의 운해는 물처럼 상당히 드라마틱하게 움직이는 느낌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구름 사이로 석양이 지는데 그 붉은 느낌을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어요. 그때 망원렌즈가 없어 이곳과 다른 그 붉은색을 가까이에서 잡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카메라는 언제부터 접했나요.

“초등학교 4학년 프랑스로 갈 때 집에 있던 조그만 카메라를 하나 가져갔어요. 필름과 현상료가 비싸다 보니 많이 찍어 보진 못했는데 그 카메라가 고장이 났어요. 직접 나사를 풀고 고치려다 결국은 못 쓰게 만들고 말았죠. 당시 음악을 가르치던 선생님께서 사진 마니아여서 카메라를 고쳐주겠다고 했지만 스승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싫어 가져가지 않았는데 훗날 왜 그때 고장 난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았느냐며 잊지 않고 말씀하셨어요. 동서양의 차이를 극명하게 깨달았죠. 지금 우리 애들에게는 어른들이 가지고 오라고 하면 당장에 감사합니다 하고 가져가라고 가르칩니다. 뒤에 프랑스에 여행 오셨던 고모부께서 내가 카메라를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사용하던 올림푸스 필름카메라를 주고 가셨습니다. 그때부터 조그만 카메라들은 계속 있었고 최근에도 우연인지 올림푸스 펜을 갖고 있습니다.”

―요리 솜씨가 수준급이라고 들었습니다.

“혼자서 오랜 유학 생활을 하다 보니 냉장고를 열어 남아있는 재료로 서양음식을 만들 정도는 됩니다.”

연주자로서 오늘의 그가 있기까지에는 본인의 노력과 좌절이 있었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의 인생 모토는 ‘무한한 성장’이다. 죽을 때까지 노력한다는 의미도 된다.

―첼로를 하면서 좌절한 적도 있습니까.

“좌절과 고통이 없었으면 오늘날의 나는 없겠죠. 고통이 없었다면 지루해 벌써 그만두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음악만이 줄 수 있는 감동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으로 포기하고 싶은 여러 순간을 극복해 왔습니다.”

―당신에 관한 음악평을 읽다 보면 ‘지적이고 독창적인 해석’이라는 문구가 늘 따라 다닙니다. 그것이 음악에서 무엇을 말합니까.

“작곡가는 저마다의 언어로 음을 펼칩니다. 연주자는 그 하나하나의 언어를 이해하고 다시 번역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 작곡가의 작품에 최대한 깊숙이 접근하여 조금 더 그 작품의 숨겨진 내면을 캐내는 작업을 하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제 연주가 남들과 똑같이 들리게 될 겁니다. 똑같은 소나무 사진을 찍어도 누가 찍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것과 똑같은 이치라 보면 됩니다.”

―국내에서는 알아주는 연주자인데 세계적으로 보면 경쟁 상대가 많습니까.

“과찬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첼로 연주자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해외에서 잊지 않고 연주 초청을 해주는 것도 다행이라 여기며 쉼 없이 내 길을 갈 뿐입니다.”

이제 마흔 셋의 첼리스트 양성원. 나이에 비해 연주에 관한 한 보수적 관점을 유지한다. 음반을 발매할 때도 편집을 거치기보다는 실황 연주를 편집 없이 한 번에 녹음하는 것이 좋다고 믿는다. 실황은 완벽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인위적 손질을 가하면 본래 연주에 담긴 뭔가가 사라진다고 생각해서다.

“기계적으로 편집된 음악은 그 연주자가 평소에 실제로 연주하는 것을 듣는 것이 아니잖아요.” 매일 첼로에 쏟는 열정만큼 자신의 연주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자신이 찍은 사진도 마찬가지다. 잡티를 제외한 어떤 부분도 손대지 않는다. 포토샵을 잘 못하는 탓도 있지만 포토샵을 해도 자기가 보았던 색채 그대로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다. 그래서 아쉽더라도 사진을 그냥 본단다.

첼로 예찬을 한마디 부탁했다. “첼로는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매력이 있습니다. 악기라는 것은 모두 자연의 목소리를 찾아가지만 그중 가장 심연에 깊게 울리는 것이 첼로의 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의 첼로 예찬을 들으며 음악 문외한도 한 가지 깨달았다. 첼로는 그에게 삶이지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천생 첼로 연주자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