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분노하기보다는/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점자시집을 읽으며 잠 못 드는 밤/별들이 내려와 환하게 손가락으로 시집을 읽는다/시들이 손가락에 매달려 눈물을 흘린다(시 ‘점자시집을 읽는 밤’중에서)》
■ 정호승 새 시집 ‘밥값’
정호승 시인은 올해로 회갑을 맞았다. 3년 만의 신작 ‘밥값’(창비)은 그의 열 번째 시집이다. 2일 만난 시인에게 제목이 적나라하다고 웃음 섞인 인상을 말했더니 “나이 들어서 그렇지, 뭘”이라며 시인도 웃었다.
새 시집 ‘밥값’에서 정호승 시인은 주변을 돌아보는 따스한 시선을 거두지 않으면서 인간 존재 그 자체에 대해 경건하게 성찰한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새 시집에는 초기 시의 ‘슬픔’을 떠올리게 하는 시편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1970, 80년대의 ‘슬픔’이 엄혹한 시대로 인한 슬픔이었던 데 비해 2000년대의 ‘슬픔’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이다. “시대라는 그늘에 눌리지 않고도 인간은 여전히 비루하고 비극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 시의 발화점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비극에서 시작된다고 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 씨는 “한편으로 인간은 믿음의 존재”라고 했다. “가령 어머니가 자식에게 주는 헌신적인 사랑을 생각해 보세요. 인간이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생각하면 희망을 갖게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깨달음을 시에 담습니다. 그래서 시는 인간을 이해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짐’은 그런 인간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 된 작품이다. ‘내 짐 속에는 다른 사람의 짐이 절반이다/다른 사람의 짐을 지고 가지 않으면/결코 내 짐마저 지고 갈 수 없다/길을 떠날 때마다/다른 사람의 짐은 멀리 던져버려도/어느새 다른 사람의 짐이/내가 짊어지고 가는 짐의 절반 이상이다/풀잎이 이슬을 무거워하지 않는 것처럼/나도 내 짐이 아침이슬이길 간절히 바랐으나/이슬에도 햇살의 무게가 절반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