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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이마트 피자와 SSM의 두 얼굴

입력 | 2010-11-07 20:00:00


출근길 아파트 단지에서 지하철역으로 가는 골목길에 가게들이 어깨를 비비고 들어서 있다. 떡방앗간 공인중개사사무소 세탁소 치킨집 만두집 베이커리 정육점 미용실 이발소…. 고만고만한 음식점들이 많다.

지하철역 근처에 ‘朴텔러’라는 맞춤 양복점이 있다. 간판에 영어로 ‘tailor’(재단사)라고 병기(倂記)해 놓은 것을 보면 ‘박테일러’를 잘못 쓴 게 분명하다. 양복점 주인 정 씨는 그전 주인이 이민 가면서 내놓은 가게를 인수해 박텔러 상호를 그대로 쓰고 있다고 했다. 45년 경력의 정 씨는 10대 소년 때 양복점 직공으로 들어가 20여 년 만에 독립해 가게를 차렸다. 한쪽 구석에는 브러더미싱 구형 모델이 놓여 있었다. 정 씨는 “환갑이 넘었는데 업종을 바꿀 수도 없고, 양복 수선도 하면서 그럭저럭 꾸려간다”고 소개했다.

대기업슈퍼마켓(SSM)의 출현으로 동네 가게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구멍가게가 슈퍼에 밀려나고 슈퍼는 대형마트와 SSM에 자리를 내준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은 창업 후 3년 안에 열 집 중 여섯 집이 문을 닫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의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을 보면 터키(40%) 그리스(35.5%) 룩셈부르크(33.8%)에 이어 한국(30.0%)이 4위로 높다. OECD 평균 15.8%의 두 배에 가깝다. 우량기업이나 서비스 업종의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고 사회안전망이 빈약하다 보니 먹고살 길을 찾아 너도나도 자영업에 뛰어든다. 결국 과당 경쟁이 벌어져 간판과 인테리어 업자만 돈을 번다는 얘기도 있다.

기업 일자리 적어 자영업 과잉

나우콤 문용식 대표가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에게 “슈퍼 개점해 구멍가게 울리는 짓 하지 말기를…그게 대기업의 할 일이니”라고 반말 트위터를 보내 한밤 설전이 벌어졌다. 신세계는 자사의 SSM ‘이마트 에브리데이’는 사업 초기에 개설한 17개에서 더 늘리지 않은 지 오래됐다고 해명했다. SSM은 롯데슈퍼 239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214개, GS마트 190개다. 문 대표가 SSM을 공격할 의도였다면 표적을 잘못 잡았다.

문 대표는 SSM에서 방향을 얼른 돌려 “피자 팔아 동네 피자가게 다 망하게 하는 것이 대기업이 할 일이냐”고 이마트를 겨냥했다. 그는 “사회가 멍드는 건 재벌 대기업을 비롯한 기득권층의 탐욕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나우콤의 ‘아프리카’는 광우병 촛불시위를 생중계했던 인터넷 방송이다. 문 대표의 말에서 대기업과 SSM에 대한 촛불좌파의 인식이 묻어난다.

SSM과 이마트 피자는 계층 갈등을 부추기기에 좋은 재료다. 청와대 관계자는 “SSM이 우리 사회에서 반(反)기업 정서를 확산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반세계화와도 관련이 있다. 정부는 SSM을 규제하자니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이 걸려 적지 않게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홈플러스 대주주는 영국 테스코 그룹이다.

SSM과 대형마트는 두 얼굴을 가졌다. 유통구조를 현대화하고 생활필수품 가격을 떨어뜨리는 것은 중산층과 서민에게도 득이다. SSM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에서 소상공인의 피해만 거론되고 소비자 후생(편익)이 배제돼 있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많은 판매원을 채용해 지역사회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다만 모든 것을 시장논리에만 맡길 경우 동네 가게로 살아가야 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계가 당장 큰일이다.

이마트 피자는 체인점 피자에 비해 규격은 더 큰데 값은 절반이다. 왕십리 이마트는 최근 논란을 의식했는지 하루 250개로 한정 판매를 했다. 과연 소비자들이 동네 피자를 살리기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해야 하는가. 소비자들은 문 대표만큼 ‘정의롭지 않고’ 가격에 민감하다. 그는 ‘동네 피자’ 편을 들었지만 그것 역시 대부분 체인점 피자다. 피자가게의 강점도 있다. 이마트 피자는 세 종류뿐인데 전문점에서는 종류가 훨씬 다양하고 고객의 기호에 따라 주문생산도 한다. 신속하게 배달도 해준다.

소비자 편익과 니즈도 다양하다

요즘 중소상인들이 어려운 것은 온라인 판매의 영향도 크다. 청소년들은 인터넷에서 수천수만 가지의 상품을 클릭해 일일이 비교하며 물건을 사는 데 익숙하다. 1960, 70년대의 거리 풍경을 장식했던 농방 양복점 양장점 시계포 같은 가게들은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박텔러처럼 기성복과 고급 맞춤복의 틈새에서 살아남는 가게들이 많아지면 거리 풍경이 다채로워지고 소비자의 선택 폭도 넓어질 것이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 그리고 세계화에 따라 새로운 자영업종이 무수히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현상을 인위적으로 막을 도리는 없다. 장기적인 해법은 서비스업 규제를 과감히 풀어 좋은 일자리를 공급함으로써 자영업자의 비중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