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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가, 박현주 회장 ‘자산 70% 해외투자론’ 찬반 논란 시끌

입력 | 2010-11-08 03:00:00

“도박 나서라는 말” vs “원칙적으로 옳다”




올해 초였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미래에셋 본사에서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을 만났을 때 그는 자산시장에 대한 단상을 1시간 가까이 이야기하면서도 “아직은 나설 때가 아니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했다. 이제는 때가 왔다고 판단한 것일까. 최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제1회 미래에셋 이머징마켓 전문가포럼’에서 그는 기자석을 직접 찾아와 작심한 듯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장기적으로 투자자산의 배분은 해외 7 대 국내 3으로 가야 한다”는 게 그날 발언의 요지였다. 이후 이 발언은 여의도 증권가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왔다. 많은 전문가가 “박 회장이 말하는 해외란 신흥시장인데 여기에 자산의 70%를 투자하란 말은 전 국민에게 ‘도박’에 나서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반면 “일정 부분을 해외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옳은 말”이라며 지지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박 회장의 발언이 문제가 된 것은 미래에셋의 ‘전력’ 때문이다. 미래에셋은 국내 주가가 최고점을 찍은 2007년 10월 말 ‘전문가들의 통찰력(인사이트)을 바탕으로 시장위험에 대처한다’며 인사이트 펀드를 내놓았다. 박현주라는 이름만 보고 ‘묻지 마 투자’가 일어났고 미래에셋이 운용하는 펀드는 한때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44%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 펀드는 분산투자 대신 중국(홍콩)에 60%를 비롯해 브라질 러시아 인도 등 브릭스(BRICs)시장에 자산의 75%를 투자했고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펀드 수익률이 반 토막났다.

박 회장의 발언은 분명 전략적이었다. 한 퇴직자는 “올해 초 박 회장이 직원들에게 2010년 사업구상을 밝힐 때도 신흥시장을 타깃으로 한 자산배분에 미래에셋이 선두주자로 나서야 할 때라고 분명히 밝혔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70%인지는 모르겠지만 해외로 자산이 나가야 한다는 것에 근본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제는 성장성이 정체됐기 때문에 한국에만 투자해서는 높은 수익률을 얻기 힘들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또 국내 인구가 고령화하면서 연금 등 금융자산 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지만 경제규모는 이를 못 따라간다는 것. 현재 300조 원을 갓 넘긴 국민연금은 2015년에는 575조 원이 될 전망이며 현재 20조 원인 퇴직연금도 2015년 73조 원으로 3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김 실장은 “국내 금융자산의 규모에 비해 국내에서 투자할 곳은 거의 없어지게 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투자할 곳이 없는데도 원금 보전을 바라고 은행저축으로만 몰려들면 경제의 저성장은 더욱 촉진되는 ‘일본식 덫’에 빠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자산이 국내에만 머문다고 반드시 경제의 발목을 잡는 건 아니다”라며 “만일 벤처기업이 활성화하고 경제가 성장하면 국내에 투자할 기회가 많아지고 이는 다시 기업의 성장과 금리상승을 이끌어 다시 투자를 늘리는 선순환구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국이 이미 성숙 경제에 접어들어 국내 투자 기회가 제한적이라는 데 있다. 한국은 경상수지에서는 흑자, 자본수지에서는 적자를 내고 있는데 경상수지에서 흑자를 유지하려면 원화절상이 과하게 이뤄지면 안 된다. 이 때문에 해외투자를 늘려 원화절상 압력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해외투자의 대상과 비중이다. 조혜진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원은 “해외자산은 정치적, 사회적, 환율 리스크에다 이자소득세와 종합과세라는 이중 과세의 부담까지 더해져 대체로 위험자산이라고 볼 수 있다”며 “재무관리에서는 위험자산 대 무위험자산의 비중을 3 대 7 정도로 분산투자할 것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예전 인사이트 펀드처럼 이번에도 신흥시장 광풍을 일으키고 싶은 모양”이라고 비판했다.

강신우 한국투자신탁운용 부사장은 “해외투자는 적어도 5∼10년의 장기투자를 염두에 둬야 한다”며 “앞으로 경제환경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자산 간 수익률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분산투자를 해야지 신흥국시장 일변도로 투자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