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버섯
태백산이나 소백산 줄기 어디쯤 산에 올랐다가 무심히 송이버섯 하나 땄다간 큰일 난다. 송이버섯은 대부분 임자가 있다. 가까운 마을 주민들 1년 농사다. 주민들이 일정한 돈을 내고 송이를 딸 수 있는 권리를 국가로부터 산 것이다. 산은 나라 소유지만 송이만은 주민들 것이다. 주민들은 해마다 추석 전후 송이 철이 되면 ‘입산금지’ 팻말도 모자라 밤새 번갈아 망을 보며 지킨다. 하물며 주인 있는 산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송이(松이·Pine Mushroom)는 산신령이 먹는 음식이다. 산삼과 같다. 옛날엔 임금이나 먹던 귀한 것이다. 신라 성덕대왕(재위 702∼737년)도 송이를 좋아했다. 조선 영조(재위 1724∼1776년)는 고추장에 보리밥을 비벼 먹을 정도로 소탈한 임금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 조차 “송이, 생전복, 새끼 꿩, 고추장 이 네 가지가 맛이 있으면 밥을 잘 먹는다”며 식탐을 했다. 어쩌면 조선의 스물일곱 임금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82세) 비결이 송이에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송이는 소나무 중에서도 살갗이 붉은 적송(赤松) 잔뿌리에서 자란다. 금강소나무 적송은 산비탈이나 바위 틈 험한 곳에서 잘 큰다. 화강암이 오랜 세월 바람에 부스러진 땅이다. 마사토 비슷한 흙이다. 송이도 그런 곳을 좋아한다.
송이는 너무 늙은 소나무는 꺼린다. 보통 20∼90년 된 소나무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40∼50년 된 소나무 아래에서 더욱 잘 자란다. 소나무 아래엔 솔가리가 수북하다. 축축해서 습기가 많다. 버섯은 축축한 곳에서 잘 돋아난다. 가을에 비가 와야 솔가리가 축축해진다. 가을 가뭄에 송이가 흉년이 되는 이유다.
송이는 암소나무 밑에서 잘 자란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소나무에 무슨 암소나무, 수소나무가 있겠는가. 암꽃 수꽃도 한 소나무에 다 있다. 자웅동체인 것이다.
하기야 일본 사람들도 흑송(黑松)을 수컷으로, 적송을 암컷으로 본다. 사실이야 어떻든 한국 사람들은 밑동이 두 개로 갈라진 소나무를 암소나무라고 부른다. 곧게 한 줄기로 뻗은 소나무는 수소나무라고 한다. 그렇다. 곧은 소나무 밑엔 솔가리가 적다. 갈라진 소나무 밑엔 상대적으로 솔가리가 많다. 송이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송이는 요즘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송이와는 다르다. 새송이는 큰 느타리버섯 품종이다. 모양이 송이버섯과 비슷해서 이름이 그렇게 붙었을 뿐이다. 톱밥을 원료로 인공으로 키울 수 있다. 서양송이인 양송이(Button Mushroom)는 주름버섯 종류다. 여름철 풀밭에서 무리지어 잘 자란다. 북한에선 볏짚버섯이라고 부른다.
‘일능이송삼표’는 왜 그럴까. 왜 첫째가 능이버섯이고, 둘째가 송이버섯, 셋째가 표고버섯이 되었을까. 그건 맛이 아니라 효능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한약재로 볼 때 효능은 능이버섯이 가장 좋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송이는 맛이 으뜸이다. 모양도 능이보다 훨씬 우아하고 품격이 있다.
송이는 갓이 중요하다. 갓이 거의 펴지지 않고 자루가 굵고 뭉툭하며 살이 두꺼운 게 1등품이다. 갓이 30% 이내 펴진 것은 2등품, 갓이 30% 이상 펴지면 3등품이다. 파손품, 벌레 먹거나 물 먹은 것은 등외품이다.
송이는 향과 씹는 맛이 으뜸이다. 소금으로 간을 맞춰 세로로 잘게 찢어 먹는 게 가장 맛있다. 일본 사람들은 아예 쇠칼을 안 쓴다. 그 귀한 송이에 쇠 냄새라도 날까 저어하는 것이다. 대나무 칼로 썰어 날것 그대로 소금에 찍어 먹는다.
올 송이가 풍년이다. ‘논두렁에도 송이가 난다’고 할 정도다. 일본도 30년 이래 최고 풍작이다. 보통 단풍이 곱게 드는 해에 송이가 많이 난다. 송이와 단풍은 함께 간다. 선선한 날씨에 가을비까지 자주 내린 탓이다. 값이 많이 떨어졌다. 1등품은 몰라도 2, 3등품은 1kg에 몇만 원대에 먹을 수 있다.
송이는 보통 9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나온다. 먹을거리로는 11월 중순까지가 끝물이다. 좀 질이 떨어지는 송이인들 어떠랴. 갓이 펴진 송이라고 맛이 없을까. 송이 맛을 볼 좋은 기회다. 내년엔 송이가 금값, 다이아몬드 값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송이가 인공번식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엔 너무 멀다. 일본도 100년 넘게 연구해 왔지만 아직도 대량 인공생산엔 실패했다.
금강소나무 아래 솔가리에 송이가 돋는다. 우우우 갓난아이 이가 돋듯 하얀 송이들이 솔잎 사이 구물구물 돋아난다. 축축한 솔 냄새. 향긋한 송이 냄새. 마른 생풀 냄새. 온갖 버무려진 가을 냄새들이 콧속에 가득해진다. 가을이 송이 향기와 함께 노릇노릇 통째로 저물고 있다.
‘가을 향기로운 것은/송이버섯 때문이다.//송이버섯 향기로움은/새의 노래 덕분이다.//산골짝 울리던/뻐꾹새 노래도/송이버섯에 숨어있다.’ <김시종의 ‘송이버섯’에서>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