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前타결’ 데드라인 쫓겼는데… 이슈는 車→ 쇠고기로 확전韓, 여론 의식 “협정문 손못대” 美 “의회비준 위해 부속서 필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배석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양국 통상장관은 정상회담 직전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쟁점을 놓고 절충을 벌였지만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타결에 실패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한미 정상이 정치적으로 공언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쟁점 합의가 1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끝내 나오지 못한 이유에 대해 정부의 한 협상전문가는 우회적 표현으로 답을 대신했다.
미국이 우리로서는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무언가를 요구한 것이 협의 중단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 그 ‘무언가’는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연료소비효율 규제 같은 ‘비관세 장벽’ 해소에서 더 나아가 점유율 확대를 위한 무리한 조건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교통상부는 당초 미국산 자동차가 한국에 수출되는 데 있어 몇 가지 애로사항이 있다고 해 이를 들어보려는 것이라고 한미 FTA 추가 논의의 성격을 규정지었다. 올해 여름부터 시작된 미국 측과의 세 차례 비공식 접촉 후 나온 발언이다.
이달 4∼7일 진행된 최석영 외교부 FTA교섭대표와 웬디 커틀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 간의 차관보급 실무회의 초기에는 자동차 안전기준과 연비, 온실가스 배출량 등의 환경 기준은 ‘조정 가능’하다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밝혔다. 안전 및 환경 기준 조정을 협의의 범위로 제한하려는 일종의 선제공격이었던 셈이다.
8일부터 시작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론 커크 USTR 대표 간 통상장관회담 초기만 해도 이 전략은 먹혀들어 가는 듯했다. 오히려 이날 장관회담이 종료된 뒤 열린 언론브리핑에선 “(안전 및 환경 기준은) 우리 국민의 안전과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등 정당한 정책 목표를 가지고 있다”며 “미국 측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겠다”며 협상력을 더 높이는 듯했다.
하지만 9일 오전 우리 정부가 미국산 자동차의 연간 판매량에 따라 안전 기준에선 정부의 사전검사 대신 업체의 자기인증 후 사후검사 인정, 환경 기준에선 연비 및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 적용을 최소 3년 이상 면제로 의견을 정리한 것이 알려지면서 협의가 급진전됐다. 언론들이 ‘사실상 타결’ 기사를 송고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결국 통상장관회담은 하루 더 연장돼 10일에도 열렸지만 자동차 분야 협상이 더 진전되지 않자 미국은 쇠고기 카드까지 들고 나왔다. 한국은 미국이 협상을 타결시킬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협상을 거부했다. 양측은 심야에 만나 한 차례 협의를 더 했지만 의견차는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
○ 시간 부족, 정치적 부담도 원인
물리적 시간 자체가 처음부터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서울 G20 정상회의 전 한미 FTA에 대한 양국의 이견을 해소하면 좋겠다’며 사실상 타결 시점을 11월로 못 박은 때는 올 6월 토론토 정상회담. 양국 의회와 여론의 초미의 관심사인 쇠고기와 자동차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데 불과 5개월의 시간이 주어진 셈이었다.
양측의 정치적 부담도 문제였다. 한국은 야당과 여론의 재협상 논란을 의식해 ‘점 하나라도 고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미국은 의회 비준을 위해 강력한 구속력이 담보된 부속서 형태의 합의가 필요했다.
결국 양측은 한미 FTA의 발효를 위해 양국 정상의 ‘정치적’ 의지도 중요하지만 여론과 의회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명분과 실리가 절실하다는 입장을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