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년 만의 50대 대주교’ 조환길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1985년 이문희 대주교 이후 25년 만에 나온 50대 ‘젊은’ 대주교인 조환길 대구대교구장(56). 2007년 교구 승계권이 없는 보좌주교에서 같은 해 주교로, 3년여 만인 4일 대주교에 임명됐다. 이례적인 큰 경사지만 축하 플래카드는 교구청에 하나 걸린 것을 빼면 교구 내 어느 성당에도 없다. 부담스럽다는 교구장의 말 때문이다. 8일 교구청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가톨릭계에서는 불과 3년여 만에 주교, 대주교 승품은 드문 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주목하고 있습니다.
“전 부족한 사람입니다. 중책을 맡아 떨리고 두렵습니다. 성직자 임무의 하나가 순명(順命)입니다. 부족하다고 도망갈 수도 없고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조짐? 우리는 모릅니다. 알 수 없어요.”
조환길 대구대교구장은 사목교서를 통해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큰 소명을 받아 버겁지만 교구와 한국교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주교회의에 가면 서열이 막내에서 세 번째였는데 대주교가 되는 바람에 앞에서 세 번째가 됐어요(웃음). 얼마나 부담스럽겠습니까. 교회가 정한 법이라 어쩔 수 없어요.”
―대구대교구는 내년 교구 설정 100주년을 맞습니다.
―구체적으로 밝혀주시면….
“하느님과 이웃과 나 자신과 올바른 관계를 갖자는 거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는 매일 묵상과 함께 성서를 읽는 거죠.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신자들이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서 살자는 겁니다. 자신의 한 끼에서 100원을 절약해 기부하자, 세 정거장은 걸어 다니자, 아파트 5층 이하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말자는 거죠. 일종의 생활운동이 되기를 바랍니다.”
―일부 개신교 신자가 만든 ‘땅 밟기’ 동영상이 문제가 됐습니다.
“종교와 신념과 이념이 달라도 다른 종교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 것이 절대적이라는 종교 근본주의에 빠지면 곤란합니다. 대구의 경우 종교인평화회의가 있어 불교 원불교 개신교 천주교 대표들이 축구대회도 열고 있습니다.”
“원불교와 천주교가 결승전을 했는데 우리가 우승했어요. 우리가 주최라 이기지 말라고 했는데 신부들이 순명 안했어요(웃음).”
―4대강 사업과 관련해 국론이 분열되고 있습니다.
“주교회의에서 찬반 양측의 설명을 모두 들었는데 이쪽저쪽 이야기 들으면 다 맞는 것 같아요. 서로 4대강을 살린다고 합니다. 이미 사업이 30∼40% 진행됐다니 그냥 덮을 수는 없을 것 아닙니까. 하지만 꼭 이 정부 임기 내에 사업을 끝낸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른 의견을 내치지 말고 수렴 및 종합하는 형태로 갔으면 합니다.”
―얼마 전 함세웅 신부가 인터뷰를 통해 정진석 추기경의 사목관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사목관이 보수다, 진보다 이렇게 비판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틀에 빠진 시각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진보 쪽에서 볼 때 보수는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거꾸로도 마찬가지고. 중요한 것은 교회정신이나 신앙 윤리에 맞느냐죠. 예를 들어 주교회의에서도 주교들은 자신의 생각을 갖고 토론하고 의견이 갈리기도 합니다. 결정할 때는 투표도 하고, 그 대신 결과에 따릅니다.”
―진보와 보수 중 어느 쪽에 가깝다고 생각합니까.
“전 그런 생각 안 해요. 정의구현사제단이나 젊은 사제들이 ‘누구누구는 보수이기 때문에 나쁘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좋은 모습은 보수에서도 나올 수 있고 진보에서도 나올 수 있습니다.”
―대주교가 된 뒤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글쎄요. 고향이 대구 달성군 옥포면인데 초등학교 동창 둘이 축하한다며 찾아왔어요.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는데. 사실 아버님이 저를 2년 늦게 호적에 올렸어요. 6·25전쟁 때 36세에 아이 다섯을 두고 참전했는데 어린 군인이 너무 많이 죽더랍니다. 그래서 형부터 전부 2년 늦게 출생신고를 했죠. 그 어려운 시절을 살아가던 아버님의 배려였죠.”
―제 나이를 찾을 생각입니까.
“검토 중이죠(웃음).”
―사목표어는 정하셨나요.
“3년 전 보좌주교가 됐을 때 영광송의 구절을 따서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이라고 했습니다. 대주교가 되면서 끝부분에 ‘영원히’를 넣을 생각인데 사제품 받을 때의 그 마음이 하느님 나라에 갈 때까지 바뀌지 말자는 의미입니다.”
대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