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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과 야만의 치악산

입력 | 2010-11-12 10:21:23


컬럼비아 필드테스터 4기 정기산행


치악산(雉岳山)은 비로봉에서 시명봉까지 남북으로 20km가 넘게 길게 뻗어있다. 가을 단풍이 물들면 붉은 산으로 변한다 해서 적악산(赤岳山)이라고 했으며, 웅장하고 골이 깊어 큰 산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다. 지형이 험하고 골짜기가 많아 곳곳에 산성과 사찰, 사적지들이 산재해 있으며 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꿩과 뱀을 비롯하여 쥐너미고개, 구룡소 등 곳곳에 그럴싸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조선 태종과 관련한 여러 사적지와 많은 전통 문화재도 산재해 있다.
 
오대산(1563) 비로봉에서 시작된 한강기맥이 계방산(1577m)을 지나 홍천군, 평창군, 횡성군의 경계인 삼계봉에서 영월지맥을 만드는데, 영월지맥은 태기산(1261m) 언저리에서 횡성군을 가로질러 매화산(1084m)을 거쳐 치악산 비로봉에 이른다. 산줄기의 동쪽은 경사가 완만하지만 서쪽은 매우 급하고 돌과 바위가 등산로 곳곳에 널려 있어 ‘악(岳)자 들어가는 산은 등산하기 쉽지 않다’는 말이 실감나는 산이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약 1시간30분 거리에 위치한 치악산은 1973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4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이름난 계곡인 큰골, 영원골, 황골, 범골, 사다리골, 상원골, 신막골 등은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입석대, 세존대, 신선대, 구룡폭포, 세렴폭포, 영원폭포 등 볼거리도 있지만 규모면에서는 너무 작아 실망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큰 산에 걸맞는 널찍한 계곡과 기이한 형상은 산행의 피로를 풀어준다. 세렴폭포는 폭포라 할 수는 없지만 낙수지점에 버티고 서 있는 바위에 큰 비가 온 후, 물이 부딪치면 작은 아치를 그린다고 한다.


고찰(古刹)로는 구룡사, 상원사, 석경사, 국향사, 보문사, 입석사가 있고, 문화재로는 구룡사대웅전(강원유형문화재 24호)과 영원산성과 해미산성 터가 있으며,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에 있는 온대 낙엽활엽수림인 성황림은 한국 중부지방의 자연림의 모습을 대표하는 숲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구룡사 아래에는 노송 군락지가 있다. 이곳에는 옛날, 국가에서 사용할 소나무(황장목)가 자라는 곳이므로 민간의 벌목을 금지한 국가지정 보호수목이라는 표시 즉, ‘황장금표’가 돌에 새겨져 있다.

황골탐방지원센터에서 20분쯤 올라가면 왼쪽으로 입석대 바위가 우뚝 솟아있다.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나 있지만 길을 따라 입석대에 올라 입석대와 그 30m 옆에 있는 1090년, 고려 선종 7년)에 조각된 마애불좌상(강원도 유형문화재 117호)은 꼭 들러보아야 할 곳이다. 마애(磨崖)불이란 자연 바위벽에 새긴 불상을 말하는데, 이곳의 자그마한 마애불은 그 모습이 참 편안하게 보였다. 920년 전, 득도를 위해 이곳에 정좌했을 한 스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상념에 잠겨본다.


비로봉에 도착하면 원주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며 조망은 더욱 좋아진다. 멀리 가까이에 산 산 산, 나무 나무 나무… 끝없이 펼쳐진다. 시루봉이라고도 불리는 비로봉에는 정상의 상징인 신선, 용암, 칠성탑이라는 돌탑 3개가 신기하다. 보통 미륵탑이라 불리는 이 탑들은 높이가 대략 5m 정도이므로 치악산의 진짜 높이는 1288에 5를 더하여 1293m인 셈이다. 세 개의 탑은 원주의 용씨 성을 가진 사람에게 치악산 산신령이 현몽하여 쌓게 되었다고 전해지는 데 제법 큰 돌을 들어올려 쌓은 그 정성과 노력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세렴폭포를 보려면 등산로에서 벗어나 10분정도 왕복해야 하나, 큰 비가 온 후가 아니라면 세렴폭포는 볼품이 없으므로 생략해도 된다. 구룡사까지 내려오면서 계곡은 점점 커지고 아직도 남아있는 옛 화전민의 주거터와 경작지의 흔적을 만난다. 무슨 연유로 치악산 깊은 골에 삶의 터를 잡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이 걸었을 같은 길을 걷다보니 그들의 삶이 무위자연의 삶이었다고 해야 할 지, 고달픈 삶이었다고 해야 할지 만감이 교차한다. 천천히 숲길을 걸으면서 치악산에 얽힌 전설과 문화재를 생각하며 구룡사를 지나 오른쪽에 숨어있는 황장금표도 찾아보길 바란다.


▲삶과 문화의 흔적을 발견한 야성과 야만의 치악산


기사 = 마운틴 월드 이규태 master@mountainworld.net
영상 = VJ 차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