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찰 ‘윗선’ 수사 누가 막았나
국민의 눈은 높아졌다. 우물 안 개구리 싸움을 보는 것도 고통이다. G20 합의대로 시장결정적 환율제로 가도 단박에 선진국이 될 순 없지만 지름길은 있다. ‘G20 반부패 행동계획’에 따라 유엔반(反)부패협약을 이행하는 거다. 우리가 2008년 비준한 협약에 따르면 뇌물수수만 부패가 아니다. ‘사법방해’는 부패로 규정하는 게 의무이고 ‘영향력 행사’에 의한 거래 또한 부패 범죄화 입법을 검토할 의무가 있다.
검찰은 분하거나 억울할 것이다. ‘BH(청와대) 하명’ 메모를 봤지만 구체적 지시 및 보고 흔적은 못 찾았고,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최모 행정관이 증거 인멸 당사자에게 차명폰을 주고 통화한 사실을 확인한 뒤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당했다고 한다.
그때 최 행정관의 상관은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으로 청와대 안에서 소란을 피우고도 끄떡없던 사람이다. 이 비서관은 박영준 당시 국무총리실 차장의 측근이며, 박 차장은 감히 민간인이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대통령 형님의 사람임을 세상이 다 안다. 만에 하나, 결정적 수사 단계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사법방해를 했다면 이는 유엔이 규정한 명백한 부패다.
대통령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수사를 놓고도 검찰은 몰매를 맞고 있다. 박연차 게이트 재판에서 그가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대통령 형님에게 수차 세무 관련 청탁전화를 했고, 임천공업 대표에게 대출 청탁과 함께 뇌물 받은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그런데도 검찰은 해외로 의료관광 다니는 천 회장을 불러들이지 못했다.
유엔협약은 결정권자가 상황을 몰랐더라도 권력자는 물론 권력 측근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부패로 본다. 본국 송환 같은 국제협력까지 명시했다. 그제 대통령도 천 회장이 있는 일본에서 “G20 합의 이행”을 강조했다. G20 행동계획을 이렇게 모범적으로 실천할 수 있게 되다니 G20 의장국으로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부패는 공공의 신뢰를 파괴하고 법치주의를 저해하며 경제성장의 장애물이라고 G20이 지적했다. 2010년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는 10점 만점에 5.4점, 이 정부 출범 이래 2년 연속 0.1점씩 떨어져 178개국 중 39위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한국에서 투자 성공은 적절한 사람(right person)과 골프 칠 사람을 찾는 데 달렸다”고 할 정도다. 대통령 주변이라 해도 다시, 철저히 수사해 ‘부패의 몸통’을 밝혀내지 못하면 당당하게 선진국으로 갈 수가 없다.
검찰총장이나 법무장관이 체면에 걸려 제 식구 재수사를 지시하지 못한다면 좋은 방법이 있다. 외부인사로 첫 감찰 수장에 오른 홍지욱 대검찰청 감찰본부장이 부실수사 여부를 조사하는 것이다. 그는 “외부에서 온 만큼 검찰 내 관행화한 잘못을 바로잡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권력의 눈치 보기가 관행이라면 이번이 그 치사한 관행을 끝장낼 절호의 기회다. 그리하여 검찰의 잘못을 샅샅이 파헤치고, 특검이라도 해서 부패의 근원까지 찍어내야 대한민국 검찰의 명예를 더럽히는 정치세력이 조용해진다.
감찰본부장도 눈치를 볼 경우 한나라당이 재수사를 관철시켜야 한다. 안 그러면 다음 총선 대선에서 혼이 날 각오를 하기 바란다. 11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도 재수사 찬성이 59.2%, 반대는 15.3%였다. 한나라당 지지층조차 찬성이 더 많다. 덮고 가도 또 터질 수밖에 없는 아킬레스건이 측근 부패다. 차라리 빨리 재판받아야 차기 대통령한테 사면이라도 받을 수 있다. 물론 한나라당 정권이 막을 내리면 힘들겠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대통령이 부실수사 의혹을 털고 가는 것이다. 부패의 몸통이 나오든 안 나오든, 불공정한 리더로 남기를 이명박 대통령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22년 전 이맘때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전두환에게 사과와 재산헌납과 낙향을 요구했다(박철언 전 의원 회고록). 그리고 어쨌든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지금이 대통령에게 나라가 잘되는 것 말고는 사심이 없음을 보여줄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