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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부패 몸통’ 잘라내고 당당히 간다

입력 | 2010-11-14 20:00:00


아무리 콩가루 집안이래도 손님이 오면 안 싸운 척하는 미덕이 우리에겐 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무사히 끝나자 정치권과 검찰은 다시 전의(戰意)를 불태울 태세다.

불법사찰 ‘윗선’ 수사 누가 막았나

국민의 눈은 높아졌다. 우물 안 개구리 싸움을 보는 것도 고통이다. G20 합의대로 시장결정적 환율제로 가도 단박에 선진국이 될 순 없지만 지름길은 있다. ‘G20 반부패 행동계획’에 따라 유엔반(反)부패협약을 이행하는 거다. 우리가 2008년 비준한 협약에 따르면 뇌물수수만 부패가 아니다. ‘사법방해’는 부패로 규정하는 게 의무이고 ‘영향력 행사’에 의한 거래 또한 부패 범죄화 입법을 검토할 의무가 있다.

마침 오늘 ‘민간인 사찰’ 사건의 이인규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에 대한 선고가 나온다. “부당한 권한 행사로 개인의 평온한 삶을 파괴했고 국회의원을 불법 내사해 국기 문란 행위를 했다”며 검찰은 징역 2년을 구형했다. 군사독재 시대를 연상케 하는 민간인 사찰에 일개 총리실 직원 혼자 영향력 행사를 했다고 믿을 국민은 많지 않다. 입때껏 오리발이던 그도 공판에서 “사찰 내용을 이강덕 청와대 공직기강팀장에게 보고했다”고 청와대 연루를 자백한 바다.

검찰은 분하거나 억울할 것이다. ‘BH(청와대) 하명’ 메모를 봤지만 구체적 지시 및 보고 흔적은 못 찾았고,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최모 행정관이 증거 인멸 당사자에게 차명폰을 주고 통화한 사실을 확인한 뒤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당했다고 한다.

그때 최 행정관의 상관은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으로 청와대 안에서 소란을 피우고도 끄떡없던 사람이다. 이 비서관은 박영준 당시 국무총리실 차장의 측근이며, 박 차장은 감히 민간인이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대통령 형님의 사람임을 세상이 다 안다. 만에 하나, 결정적 수사 단계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사법방해를 했다면 이는 유엔이 규정한 명백한 부패다.

대통령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수사를 놓고도 검찰은 몰매를 맞고 있다. 박연차 게이트 재판에서 그가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대통령 형님에게 수차 세무 관련 청탁전화를 했고, 임천공업 대표에게 대출 청탁과 함께 뇌물 받은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그런데도 검찰은 해외로 의료관광 다니는 천 회장을 불러들이지 못했다.

유엔협약은 결정권자가 상황을 몰랐더라도 권력자는 물론 권력 측근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부패로 본다. 본국 송환 같은 국제협력까지 명시했다. 그제 대통령도 천 회장이 있는 일본에서 “G20 합의 이행”을 강조했다. G20 행동계획을 이렇게 모범적으로 실천할 수 있게 되다니 G20 의장국으로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재수사 없이 신뢰회복 어렵다

부패는 공공의 신뢰를 파괴하고 법치주의를 저해하며 경제성장의 장애물이라고 G20이 지적했다. 2010년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는 10점 만점에 5.4점, 이 정부 출범 이래 2년 연속 0.1점씩 떨어져 178개국 중 39위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한국에서 투자 성공은 적절한 사람(right person)과 골프 칠 사람을 찾는 데 달렸다”고 할 정도다. 대통령 주변이라 해도 다시, 철저히 수사해 ‘부패의 몸통’을 밝혀내지 못하면 당당하게 선진국으로 갈 수가 없다.

검찰총장이나 법무장관이 체면에 걸려 제 식구 재수사를 지시하지 못한다면 좋은 방법이 있다. 외부인사로 첫 감찰 수장에 오른 홍지욱 대검찰청 감찰본부장이 부실수사 여부를 조사하는 것이다. 그는 “외부에서 온 만큼 검찰 내 관행화한 잘못을 바로잡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권력의 눈치 보기가 관행이라면 이번이 그 치사한 관행을 끝장낼 절호의 기회다. 그리하여 검찰의 잘못을 샅샅이 파헤치고, 특검이라도 해서 부패의 근원까지 찍어내야 대한민국 검찰의 명예를 더럽히는 정치세력이 조용해진다.

감찰본부장도 눈치를 볼 경우 한나라당이 재수사를 관철시켜야 한다. 안 그러면 다음 총선 대선에서 혼이 날 각오를 하기 바란다. 11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도 재수사 찬성이 59.2%, 반대는 15.3%였다. 한나라당 지지층조차 찬성이 더 많다. 덮고 가도 또 터질 수밖에 없는 아킬레스건이 측근 부패다. 차라리 빨리 재판받아야 차기 대통령한테 사면이라도 받을 수 있다. 물론 한나라당 정권이 막을 내리면 힘들겠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대통령이 부실수사 의혹을 털고 가는 것이다. 부패의 몸통이 나오든 안 나오든, 불공정한 리더로 남기를 이명박 대통령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22년 전 이맘때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전두환에게 사과와 재산헌납과 낙향을 요구했다(박철언 전 의원 회고록). 그리고 어쨌든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지금이 대통령에게 나라가 잘되는 것 말고는 사심이 없음을 보여줄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