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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공부]학교로 ‘출근’하는 엄마들

입력 | 2010-11-16 03:00:00

확 달라진 학교참여활동… 영어수업 봉사, 상담도우미, 미술-음악 특별활동지도…




그래픽 임은혜 happymune@donga.com

《“내일 아이들 발표회가 있어서요. 종일 강당에 풍선 달고 막 나오느라고 옷도 못 갈아입었어요. 아직 다른 엄마들은 학교에 있는데….”

11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학부모 박모 씨(41·여)를 만났다. 박 씨는 학교 행사 때마다 풍선장식을 도맡는다. 학교 일 할 때 쓸 일이 많을 거라는 선배엄마의 조언에 풍선아트 3급 자격증도 땄다. 박 씨는 “지난해까지는 회사에 다녀서 학교에서 하는 엄마들 활동에 전혀 참여할 수 없었다”면서 “전업주부가 되어 학교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보니 엄마 네트워크도 달라지고선생님과도 한결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최근 엄마들의 학교참여활동 양상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엄마가 학교를 자주 드나드는 것을 ‘치맛바람’으로 치부하던 것은 옛말. 청소, 급식, 교통지도에 국한되던 활동영역을 뛰어넘어 최근엔 학습, 봉사, 의사결정까지 다양해질 만큼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학부모가 크게 늘었다. 한 초교에선 엄마가 저학년을 대상으로 책을 읽어주는 활동을 하고 점심시간에 엄마가 직접 영어회화를 가르치기도 한다. 한 중학교에선 엄마가 사이버 상담사로 나서 학생의 고민을 듣는다.

엄마들이 적극적으로 학교활동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참여활동의 유형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런 분위기 속에서 늘어난 스트레스와 고민을 호소하는 엄마들은 없을까? 학교참여활동 확대 양상과 이에 따른 학부모의 애환을 들어보자.

○ 학부모 학교참여활동, 그 빛과 그림자는?

엄마들의 적극적인 학교활동 참여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정책, 학교 차원에서 학부모 참여를 장려하는 움직임에 따라 속도가 붙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올 2월부터 ‘학부모 학교 참여 지원사업’을 실시했다. 전국 2000개 학부모회를 선정하고 학교당 500만 원을 지원해 학부모 활동을 활성화하려는 목적이다. ‘우리 아이를 함께 키우는 학부모 활동’ 사업을 추진하면서 학부모 참여 시범학교를 지정하고 활동을 지원해온 것도 같은 맥락. 하지만 학부모의 활동 참여에 대한 의미가 부각되고 중요해지다보니 울상인 학부모도 있다.

대형 어학원에서 상담실장으로 일하는 직장엄마 김모 씨(41·서울 강남구)는 요즘 학기가 끝나간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중1인 아들이 2학기에 덜컥 학급 부회장을 맡게 되었을 때 대견함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평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어학원에 매여 있어야 하는 데다 토요일에도 학생들 레벨테스트와 학부모 상담이 이어져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학기 초 반대표를 맡은 회장엄마에게 전화가 왔을 때는 “오전 모임에는 빠지지 않고 가고 적극적으로 활동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지키기 어려웠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는 학부모의 봉사활동이 특히 강화된 곳이었다. 임원 학부모는 주중에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에 관한 회의에 참석해야 했고 휴무토요일엔 인근 노인복지시설도 방문해야 했다. 김 씨는 “전업주부들의 네트워크에 직장맘은 절대 낄 수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면서 “한두 번 활동에 빠졌더니 요즘엔 연락이 잘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씨는 또 “한 학기 동안 맘고생을 너무 하다보니 아이들에게 ‘엄마가 너 못 도와주니까 웬만하면 반장하지 마’라고 이야기한다는 다른 직장맘의 하소연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며 하소연했다.

활동 유형이 달라지다 보니 직장엄마에겐 최후 수단이었던 ‘대타’를 세우기도 어렵다. 청소, 급식도우미를 맡았을 땐 전문적으로 대행해주는 ‘알바 아줌마’를 쓰기도 했지만 요즘은 학부모의 참여가 결정권을 가지거나 교육적인 프로그램이 많아져 이마저 어렵다.

교과부가 예로 든 학부모 참여활동은 △영어수업봉사단 △역사교실도우미 △명예교사회 △도서봉사위원회 △상담도우미 △공동구매추진위원회 등.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시간을 써야 하는 활동이 대부분이다. 엄마들은 학교활동에 쓸모가 있을 만한 것을 배우느라 분주하다. 문화센터나 복지관 등에서 실시하는 리본공예, 선물포장, 풍선아트는 간단하게 배울 수 있으면서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초급 수준의 강의를 할 수 있고 환경 꾸미기 등에 활용도가 높아 선호하는 분야다.

○ 학부모들, 학교참여활동에 왜 열성적일까?

적잖은 시간, 비용, 노력을 들여야 하는데도 학부모의 참여율은 날로 높아진다.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에선 전교생의 3분의 2가량의 학부모가 1개 이상의 활동에 참여할 정도. 2개 이상 활동에 참여하는 학부모는 절반에 가깝다.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 교사는 “교육열이 높고 여유가 있는 지역일수록 관심과 참여가 높다”면서 “방과후 수업 프로그램과 강사도 학부모가 직접 결정하게 하는 등 의사결정권이 확대되는 추세인 만큼 예전처럼 내 아이만 잘 되게 하려고 학교에 드나든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많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엄마들은 왜, 어떤 이유로 적극적으로 학교활동에 나서게 되었을까. 자녀가 많아야 한둘이어서 관심이 쏠리다보니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 수업은 어떤지, 학교 행사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해하는 학부모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학교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교사와 친분도 쌓고 내 아이를 한 번이라도 더 봐주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일부 작용하는 것도 사실. 익명을 요구한 경기지역의 한 학부모는 “담임교사에 따라 다르지만 엄마가 학교 일에 열성을 쏟으면 아이가 ‘모범상’ ‘선행상’을 받을 확률은 그만큼 높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꼭 필요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다. 가정통신문,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공지하지만 학부모는 꼼꼼히 챙기기 어렵다. 학교에 자주 드나들다보면 알게 모르게 들을 수 있는 정보가 많다. 초등학교에서 도서관 사서도우미 활동을 했던 주부 박모 씨(45·서울 송파구)는 “점심시간에 사서교사와 교대해 서가 정리를 맡았는데 책상에서 독서 퀴즈대회 때 학년별로 아이들 읽어야 할 독서목록을 보았다”면서 “가정통신문으로 공지는 했겠지만 아이들이 잘 전달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학부모 눈으로 확인하게 되니 꼭 읽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모조리 사고 독서퀴즈를 준비시켜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전했다.

열심히 활동하는 엄마들의 자녀가 학업성적이나 생활태도가 우수한 경우가 많다는 공식도 엄마들 사이에선 공감대를 형성한다. 한 학부모는 “한 반을 30명이라고 했을 때 학교활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학부모가 10명이라면 이 그룹 학부모의 자녀들 성적이 10∼15등 이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다”고 말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