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북한이 심각한 고립감을 맛본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이었을 것이다. 옛 소련과 중국까지 잇따라 대회 참가를 표명하자 북한은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을 일으켰다. 지령을 내린 것은 후계자로 결정된 김정일 현 국방위원장으로 알려져 있다. 장래 자신이 끌고 갈 국가에 대한 심각한 불안감이 모험주의로 치닫게 한 것일까.
그로부터 30여 년이 흘러 이번에는 김 위원장의 셋째아들 김정은이 후계자로 데뷔했다. 할아버지를 빼닮은 풍모나 꾸며낸 초인적 천재신화와는 무관하게 어려서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은 본인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을 터이다. 언제부터 국가 운영 책임을 지게 될지 모르는 불안 속에 눈앞에서 똑똑히 펼쳐진 G20에서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도 주역이었다.
3대 세습 인정… 6·25 혈맹 강조…
한참 전, 김일성 주석이 아들을 데리고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의 최고실력자인 덩샤오핑(鄧小平)은 사회주의 국가의 세습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뜻 북한의 세습을 인정한 것은 이 나라에 대한 중국의 큰 배려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중국의 후계자로 결정된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의 최근 발언은 놀랄 수밖에 없다. 6·25전쟁에 참전한 중국 병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위대한 항미(抗美) 원조 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대항하는 정의의 전쟁” “중국은 북한과 피로 맺어진 우정을 잊은 적이 없다”고 언급했다.
북한의 핵개발에도 단호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고, 천안함 폭침 사건에서 시종일관 북한을 두둔해 온 중국이라고 해도 시 부주석의 발언은 너무 나갔다. 6·25전쟁이 북한의 선제공격으로 인해 촉발됐다는 것은 세계가 아는 상식이고 중국 역시 모를 리 없는 사실이다. 중국의 참전이 없었다면 남북은 통일되고 일찌감치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됐을 것이다.
시 부주석에게는 중국 인민해방군을 고무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중국에서 리더가 되는 데는 군의 지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 수뇌들이 취임을 전후해 제일 먼저 북한을 방문하는 것으로 볼 때 북한은 중국이 아직도 중요하게 여기는 국가라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종종 “중국과 북한은 이와 입술과 같은 관계”라고 말한다. 중국 고전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관계를 의미한다. 중국이 양국 관계를 이렇게 표현한 것은 김일성 주석이 1958년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올해 여름 어느 일중(日中) 포럼에서 있었던 일이다. 자민당 정권에서 방위상을 지냈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씨가 흥미로운 질문을 했다. “입술은 이를 보호해주는데 이는 입술을 깨물기도 한다. 중국과 북한의 관계도 그런 겁니까?” 중국 측 참석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본래 친밀한 관계를 의미하는 말이지만 지금은 단지 이웃 국가일 뿐 각별한 관계는 아니다”라고. 실제로 중국에는 북한을 골칫거리 국가라고 한탄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中인권문제도 北이 보호막 역할
그런 점에서 시 부주석의 발언은 좀 의외이기는 해도 그렇게 놀랄 필요까지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경제 성장이 눈부시고 G20에서 주목을 받는 중국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이질적인 국가’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비판을 피하는 데 북한은 더없이 편리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계가 중국에 북한을 어르고 달래는 역할과 북한의 모범적 모델이 돼 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한 북한은 중국에 고마운 국가이지 않을까. 입술을 확 벌려 썩은 이를 신속히 치료해주는 게 더 나은 일이지만 말이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편집위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