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는 아버지 이름으로 들었던 재해사망보험금을 청구했으나 보험회사는 거절했다. 갑자기 증상이 나타난 심장질환이나 뇌혈관질환으로 의식을 잃고 계단 아래에 쓰러져 돌아가셨으므로 재해 사망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의사가 작성한 검안서는 사망 원인을 ‘미상’(알 수 없음)이라고 했고, 경찰 조서는 가족의 진술을 바탕으로 작성됐기에 인정할 수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경찰은 애초에 변사사건으로 조사했으나 범죄의 의심이 없기에 종결했다. 어차피 사망 원인이 질병 때문이거나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사고 때문이라면 경찰로서는 개입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부검 등의 절차는 진행되지 않았다. 그래도 검시는 필요했다. 김 씨에게는 어쩌면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재해사망보험금)를 찾지 못하였다는 억울함이 남을 수 있다. 만약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지급했다면 그 역시 근거가 없는 지급이다.
선진국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모든 변사자에 대해 경찰의 수사와 무관하게 의학적 검사(검시)를 한다. 검시는 경찰의 수사와 달리하며, 대상과 절차를 법률로 정한다. 수사 책임자는 경찰 조사 결과와 독립된 검시 결과를 얻는다. 이렇게 변사사건에 대해 수사와 다른 의견(second opinion)을 구하면 사건이 잘못 처리될 가능성은 훨씬 낮아진다.
검시 방법으로는 주검을 훼손하지 않는 검안과 해부를 통한 부검이 있다. 외국의 예를 보면 검시 대상의 3분의 1이 부검 대상이다. 우리나라에는 해마다 3만6000건의 검시 대상이 있고 이 가운데 1만2000건이 부검 대상이다. 그런데 국내의 실제 부검 건수는 매년 6000건 정도일 뿐이다.
부검 대상이지만 부검하지 않은 6000건은 어떻게 되는가. 2만4000건에 이르는 검시 대상은 과연 전문적인 검사를 받는가. 물론 검시를 하지 않았다거나 부검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건이 모두 잘못되지는 않는다. 아주 적은 수는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다. 그래서 범인이 바뀌었거나 범인이 없는 변사사건이 가끔 있다.
검시제도와 관련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필요성은 모두 인정한다. 근년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검시제도 확립을 정부에 권고했고 입법을 추진했다. 재작년에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서 매우 깊게 다뤘다. 결국 두 가지 문제 때문에 해결되지 않는다. 하나는 검시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느 부서가 관장하느냐다.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