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비리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는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칭병을 애용한다.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고 법원에 호소하면 병보석으로 풀려날 수도 있고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경우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2007년 9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한국 재벌 총수들은 곤란한 일이 생기면 휠체어를 탄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유난히 재벌 총수들이 휠체어를 타고 재판을 받는 경우가 많고 사법부가 이들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린다고 비꼬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2006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07년 재판 때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를 탔다. ‘칭병 전략’이 효과가 있었는지 이들은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정태수 전 한보 회장,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도 환자복 차림에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나갔다. 박 전 회장은 올 1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현재 고향에서 정월대보름 쥐불놀이를 할 정도로 자유롭게 산다. 휠체어를 탄 정치인으로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04년 현대비자금 사건 재판 때 반백의 헝클어진 머리에 녹내장 수술을 받은 눈에 안대를 하고 마스크를 쓴 채 링거까지 팔에 꽂아 ‘매우 불쌍한 모습’을 연출했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