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정오 서울 광화문광장.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청와대를 향해 트럼펫을 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소리를 듣고 깨어나라는 의미로
연주한 ‘기상나팔’이라고 했다. 그리고 ‘탈의 중’이라는 팻말을 남기고 보수작업에 들어간 이순신 동상을 대신하는 것처럼 왼손으로 칼
대신 팻말을 잡고 섰다. ‘대포정권 완전교체’. 시민들은 흘깃 보고 지나치거나, 다가가 악수를 청하거나, 더러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쇼 아냐?” 한 여성의 말에 친구가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대포정권인 건 맞잖아!”
▷손 대표는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해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당 대표실에서 ‘100시간 농성’을 벌였으나 별다른 메아리를 내지 못했다. 다음
수순은 장외 투쟁밖에 없을 것이라고 당 안팎에선 진작 내다보고 있었다. 민주당 대표로 복귀한 이후 뚜렷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그에게 ‘반(反)독재 투쟁’은 전공이나 마찬가지다. 아니나 다를까. 손 대표는 그제부터 서울광장에서 일주일간의 철야농성을
결정했다. 하루 세 차례 광화문광장 1인 시위에선 기상나팔을 힘차게 불겠다고 했다.
▷서울광장 농성장에 마련된
‘국민서명대’까지 일부러 다가와 서명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일부 국회의원의 지역구에서 버스를 전세 내어 찾아온 여성들이 서명을
했고, 주변엔 노인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손 대표는 꼭 장외로 나와야 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국민이 아직 잘 모른다”며
“대포폰을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손 대표는 장외투쟁과 국회 등원 결정을 동시에 내려 국정 수행과 투쟁을 병행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국민의 어느 정도가 손 대표의 장외투쟁을 지지할지는 모르겠지만 한낮의 현장 분위기는 뜨겁지
않았다. 제1야당 대표로서 철야농성보다 일자리와 경제, 북한의 핵 위협에 적극 대처하는 것이 ‘대포정권 완전교체’를 성취하는
일일지 모른다. 공교롭게도 장외투쟁 첫날 북한의 연평도 도발이 터졌다. 민주당은 오후 4시 반 서울광장에서 열 예정이던 최고위원회
장소를 국회로 변경했다. 철야농성팀도 천막을 걷고 철수했다. 오후 5시 또 나팔을 불 예정이었던 손 대표는 그 시간 “그동안
전개한 서명운동을 일단 중지한다”고 말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