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센스’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으로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넌센이션’. 사진 제공 샘 컴퍼니
유쾌한 코믹 뮤지컬 '넌센세이션(Nunsensation)'을 보면서 제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문이 맴돌았습니다. 제 머릿속을 오고간 문답을 이 뮤지컬에 등장하는 만담형식으로 묶어봤습니다.
어, 이게 뮤지컬이야? '죄악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로 자선공연을 떠난 다섯 명의 수녀이야기를 춤 노래와 함께 엮었으니 뮤지컬이지, 그럼. 그렇지만 이야기가 하나의 드라마라기보다는 다섯 수녀의 캐릭터별 장기자랑과 스탠딩 코미디(만담)로 엮어진 버라이어티 쇼에 가깝잖아? 무슨 소리야? 춤과 노래가 들어간 공연이면 다 뮤지컬이지.
그럼 오페라도 뮤지컬이고 창극도 뮤지컬이고, 악극도 뮤지컬이고 공연 도중 노래 몇 곡 들어간 음악극도 다 뮤지컬이게? 음악극 중에서 별도의 전통을 지닌 오페라나 우리나라의 창극, 중국의 경극이나 일본의 가부키 같은 특수한 경우를 빼면 다 뮤지컬 아냐? 그럼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한 '천변살롱'이나 '천변카바레'처럼 콘서트 진행하면서 노래와 노래 사이에 가수들이 짤막한 연기를 펼치는 것도 뮤지컬이겠네? 요즘 공연예매사이트를 들어가 봐. 음악극이라는 작품들 대부분 뮤지컬로 분류돼 있잖아?
하지만 뮤지컬의 본고장인 미국사람들도 그런 작품을 뮤지컬로 볼까? 미국사람들이 얼마나 융통성 많고 실용적인데 그걸 따따부따 따지겠냐? 하긴 자기네가 계발한 장르 이름을 여기저기 붙여주면 좋아하긴 할 것 같은데, 그럼 너무 억울하잖아. 영국과 미국에 기원을 둔 음악극의 특수한 장르 이름을 다른 모든 음악극의 보편명사로 만들어주는 셈이니까. 아, 골치 아프게 정말, 그래 좋다! 뮤지컬이 영미권 특수한 장르라고 치자. 그래봤자 '넌센세이션'은 어차피 미국 작품이니까 뮤지컬이라고 불러도 아무 문제가 없잖아.
그래 예전에 프랑스 관광 가서 한번씩 보던 '리도 쇼'나 '물랭루즈 쇼' 같은 거, 그리고 1980년대 이주일 씨가 TV광고로 소개하던 극장식 레스토랑 '초원의 집' 같은 데서 하던 쇼잖아. 그렇지 외국인이 한국 찾아오면 워커힐 호텔에서 보여주던 워커힐 쇼도 그런 장르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까 내 말은 '넌센세이션'은 정통 뮤지컬이라기보다는 그런 카바레나 버라이어티 쇼에 가깝지 않느냐는 거지. 뉴욕 할렘 뒷골목에서 껌 좀 씹었다는 로버트 앤 수녀(김현진·김현숙)는 만담 담당, 한때 유명가수 출신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엠네지아 수녀(이혜경·최우리)는 노래 담당, 발레니라를 꿈꿨다는 레오 수녀(김소향·이정미)는 춤 담당. 그리고 서커스단과 코러스걸 출신의 원장수녀(양희경·이태원)와 허버트 수녀(홍지민·김희원)는 연기 및 진행 담당. 사실 라스베이거스로 공연을 떠난 수녀들의 좌충우돌 해프닝이란 얼개를 빼고 나면 굳이 드라마라고 할 내용도 없잖아.
제법 날카로운데. 사실 '넌센이션'의 원조 격인 '넌센스'(1985년)가 처음 구상될 때는 카바레 쇼 형식으로 구상됐다고 하더군. 다섯 명의 수녀가 펼치는 카바레 쇼, 꽤 선정적이잖아. 오프 브로드웨이 공연으로 올라갈 때는 극적인 구조를 상당히 보강했다고 해. 그런데 '넌센스2'(1994) '넌센스-잼보리'(1995) '넌크래커'(1998) '메슈가넌스'(2004) 그리고 '넌센세이션'(2005)으로 정식 시리즈만 다섯 편에 이르게 되면서 전체 스토리보다는 다섯 명의 캐릭터가 남게 된 것 같아. 그래서 마지막 작품인 '넌센세이션'의 부제 자체가 'The Nunsense Vegas Revue'라고 카바레와 유사한 레뷔(Revue)라는 장르 명을 달고 있어.
야, 미국문화 뿌리가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코믹 뮤지컬이란 장르 하나에도 다양한 공연역사가 녹아 있구먼. 그렇지, 그러니까 '넌센세이션'은 철저히 미국 뮤지컬의 전통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 우리에게 익숙한, 하나의 완결된 드라마로 이뤄진 뮤지컬은 '북 뮤지컬'이라고 하는데 1927년 '쇼 보트' 이후에나 등장한 최근의 장르라고 할 수 있지. 그렇군, 그러니까 '넌센세이션'은 카바레 또는 레뷔 양식의 뮤지컬이므로 당당히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이지. 그래 이 친구야, 그러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즐겨. 그리고 다트게임이고 경매고 손들고 열심히 참여하면 푸짐한 선물을 받을 수 있으니까, 배우들이 객석에 말을 걸 때마다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4만~8만 원. 내년 1월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02-744-4334.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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