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 원자/마크 뷰캐넌 지음·김희봉 옮김/288쪽·1만5000원·사이언스북스
이론 물리학자 마크 뷰캐넌은 ‘사회적 원자’에서 사회를 하나의 물체로, 그리고 인간을 그 사회라는 물체를 이루는 원자(atom)로 이해하면 세상사의 배후에 있는 패턴이나 정밀한 수학적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림 제공 사이언스북스
1970년대 인도에선 인구 폭등이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정부는 세 자녀를 둔 가정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다각도로 정책을 펼쳤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남쪽의 케랄라 지역에선 인구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안정세를 보였다. 수천 년 동안 계속되던 인구 증가 추세가 케랄라에서만 유독 꺾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해석은 학문 분야에 따라 제각각으로 나올 수 있다. 전통적으로 보면 이런 문제에 대해선 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같은 사회과학적 접근이 주류를 이룬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점에 문제를 제기한다. 사회과학적 접근이 놓치는 부분이 많으므로 자연과학적 방법을 대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리학의 가장 큰 연구 목표는 원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를 이해할 때도 ‘사회적 원자’의 상호작용을 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케랄라에서 나타난 인구 안정세는 교육의 확산 덕분이었다. 산아제한 교육 같은 직접적인 교육이 아니라 읽기와 쓰기, 산수 같은 기초교육이었다. 특히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의 효과가 컸다. 공부하는 분위기가 지역 구성원 사이에 확산되면서 전체적인 교육수준이 상승했다. 교육수준의 상승은 출산에 대한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고 교육수준이 높은 여성들은 둘 혹은 하나만 낳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다.
보스니아 내전에서 나타난 갑작스러운 민족주의 폭발도 사회적 원자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증폭된 것으로 저자는 해석한다. 최근의 사례로는 2005년 프랑스에서 발생한 대도시 근교 소요 사태를 들 수 있다. 파리 근교 일부 지역에서 이민자를 중심으로 시작된 소요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체포된 인원만 3000여 명에 이르렀다.
왜 사람들은 이처럼 집단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할까라는 의문에 대해 저자는 사회적 원자를 지배하는 규칙을 들어 설명한다. 사회적 원자인 인간은 패턴을 알아보는 데 민감하고,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물질의 원자를 들여다봐도 모든 원자에는 방향이 있으며 외부 요인으로 여러 원자가 한쪽으로 방향을 틀면 이웃한 원자도 대세에 따라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주는 영향이 강하면 사회 변화는 불연속적으로 일어나서 인구의 상당 부분이 하나의 행동이나 한 사람의 견해에 따라 거의 같은 순간에 변화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런 상호작용을 통해 의도하지 않은 채 유행과, 민족주의적 열광과 주식시장의 투기열풍을 만들어낸다. 저자는 “사람을 사회라는 ‘물질’을 이루는 ‘원자’로 보면 루머의 확산, 주가의 등락 등 인간사회에서 반복해 일어나는 패턴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집단행동, 모방 등에 대한 해석은 ‘사회적 원자’라는 용어를 내세운 것 말고는 다른 분야의 해석에 비해 새로울 게 없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도 있다. 저자는 이런 지적을 의식한 듯 각종 과학실험과 실제 사례 분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실험과 사례만으로도 읽는 재미는 충분하다.
책에선 조화로운 사회를 위한 힌트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우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이 풍부함은 어느 한 개인의 풍부함 덕분이라고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 그들의 생각, 작용과 반작용의 어울림이다”라고 강조한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