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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남자는 두번 울지 않는다

입력 | 2010-11-28 20:00:00


천안함 전몰장병 46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 대통령은 끝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4월 19일 천안함 희생자 추모 연설에서 철통같은 안보를 다짐했다. 그리고 일곱 달 후. 북의 연평도 공격으로 전사한 장병 합동분향소에서 대통령은 고 서정우 하사 부친의 통곡에 또 한번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대통령과 軍을 신뢰할 수 있을까

유낙준 해병대사령관이 조문을 마치고 눈물을 닦는 사진 뒤엔 거친 비판까지 붙어 있다. “이제 국민은 사망자 앞에서 조문하며 슬퍼하는 군인을 보고 싶지 않다.” “대통령이나 사령관이나 질질 짜는 꼴이니 국방이 이 모양이지.”

상가에선 곡을 하는 것을 예(禮)로 삼았던 우리 민족이다. 하지만 남자는, 더구나 리더는 함부로 눈물을 흘려선 안 되는 법이다. 남녀차별이라 해도 할 수 없다. 맞고 오는 아들을 보고 싶지 않은 것처럼, 당하고 우는 못난 남자도 보기 싫다. 첫 번째 눈물은 인간적 정리 또는 결연함을 보인 것으로 이해한대도 대통령이 똑같은 이유로 두 번이나 우는 건 국민에게 결코 보여선 안 될 모습이다.

인식(認識)이 사실을 이긴다고 했다. 대통령이 북의 연평도 공격 이후 첫 메시지로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하라”고 했든 안했든, 국민의 머릿속엔 이미 제 국민과 영토 보전보다는 전쟁을 더 우려하는 대통령으로 각인돼 버렸다.

우리만의 오해가 아니다. 영국 BBC도 영국 시간 23일 오전 7시 32분 “이명박 대통령은 ‘단호히 대처’하되 또한 ‘상황이 악화되지 않게’ 확실히 하라고 촉구했다”고 전했다. 오보 탓할 것 없다. 대통령의 메시지를 몇 번씩 바꿔 내보낸 것부터가 무능의 소치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전방은 괜찮으냐”고 첫마디를 던졌다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일관된 메시지와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위기 자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아니 어떻게 대처한다고 인식되느냐가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좌우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두 번의 호기를 놓친 대통령을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천안함 사태 뒤 5·24 담화에서 대통령은 분명히 다짐했었다. “앞으로 (북한이) 우리의 영해, 영공, 영토를 무력 침범한다면 즉각 자위권을 발동할 것”이라고. 어제 다이빙궈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에게도 대통령은 “북한이 추가 도발해 온다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사실상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냉철하게 따지면 대통령이든 경질된 국방비서관이든 ‘이번엔 확전을 피하고 다음엔 가만있지 않는다’고 한 메시지가 잘못됐다고 하긴 어렵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전면전을 원하는 국민이 많지 않은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내게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인 강사는 “요 며칠 새 세계 곳곳의 지인들에게서 괜찮으냐는 e메일을 엄청 받았다”며 “이성적이고 실용적인 대통령이 상황 악화를 막은 것을 행운으로 여기라”고 했다. 국가의 명운을 책임진 리더로선 확전이 초래할 인명 피해와 경제적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어찌 보면 이것이 더 현명한 판단일 수도 있다.

벙커에서 나와 국민과 함께하라

문제는 이젠 3·26 천안함 사태가 그럭저럭 지난 뒤 우리가 돌아갔던 평온한 시대로 다시 돌아갈 순 없다는 사실이다. 분쟁지역 관련 저자로 이름난 로버트 캐플란은 “정권의 유지에만 사로잡힌 북은 인민을 경제개혁 아닌 끝없는 전쟁태세로 몰아세울 수밖에 없다”고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에 썼다. 연평도 도발에서 우리의 약한 모습을 또 한번 확인한 북은 수시로 김정은의 영광을 위해 도발할 것이고, 북을 감싸온 중국은 헤게모니를 잡은 듯 경제력 군사력과 자신감을 과시하기 시작했으며, 미국은 거꾸로 경제적 정치적 위력과 함께 국방예산도 떨어져 가는 상황이다.

어쩌면 과거 정권처럼 제발 가만히 있어 달라고 김정일의 대를 이어 김정은 정권에까지 뇌물을 바치거나 북이 붕괴 또는 개과천선하지 않는 한, 지금까지 우리가 누리던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는 기대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57년째 전쟁이 끝나지 않은 분단국 국민으로 살면서도 잊고 지내온 북의 위협을 이제야말로 뼈저리게 느껴야 할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고 민간인 남녀노소가 모두 무장(武裝)을 할 순 없고 믿을 데는 미우나 고우나 군과 정부뿐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우선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나와 국민 앞에, 국민과 함께 서주기 바란다.

대통령과 주요 인사들의 안전이 국가안위만큼 중요한 건 안다. 그러나 작년부터 경제위기 상황이라며 ‘워룸’을 차리고 수시로 들락거린 비상벙커에 지금까지 모여앉아선 결국 메시지 혼선밖에 나온 게 없다. 설령 대통령이 “한 번 더 도발하면 백배 천배로 갚아주겠다”고 해병대사령관과 똑같은 말을 해도 어쩔 수 없다. 적어도 맨몸으로 북과 맞서는 국민과 똑같은 자세여야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