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서영남 지음/휴
《“줄 세우는 사람들의 인정머리 없는 잔소리를 들으면서 묵묵히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배고픈 사람들을 앞에 세워놓은 채 설교하고 기나긴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 다 식어버린 밥을 먹는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팠다. 또 밥을 먹은 후에 설교를 하면 전부 가버리니까 먹기 전에 해야 한다는 뜨거운 열정이 가슴 아팠다. 배고픈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한 그릇의 밥이 아니라 ‘사람대접’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가슴 아팠다.”》
“노숙인이나 배고픈 사람들은 모두 세상의 줄서기 경쟁에서 밀려난 꼴찌들이다. 그런데 민들레 국수집에서마저 줄을 서서 선착순으로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끔찍한 일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은 자기 존재감을 잊으면서 홀로 설 용기를 잃고 자포자기하기 쉽다. 그래서 저자는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관심을 가져줄 단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해야 조금씩 자신의 존재감을 되찾게 되고 살아갈 의욕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6인용 식탁 하나에 손님 6명이 앉으면 설거지할 틈도 없을 만큼 비좁았던 국숫집은 이제 24명이 한 번에 식사할 수 있을 만큼 넓어졌다. 요즘은 날마다 찾아오는 손님이 400∼500명에 이르고 하루에 들어가는 쌀만 150kg이다. 정부지원도 받지 않고 부자들의 생색내기식 기부금도 사양하며 후원회도 없지만 오늘도 민들레 국수집에서는 따뜻한 밥과 국, 다섯 종류 이상의 반찬이 손님을 기다린다.
월요일마다 점심을 거르며 모은 돈을 1년간 저축했다가 전달해주는 아저씨, 하루 폐지 15kg을 모아서 번 돈 1000원을 반찬값에 보태라며 내는 할머니 손님, “국숫집 손님들을 위해 쓰고 싶다”면서 영치금을 모아 보내오는 교도소 재소자 형제, 매달 연금 13만 원에서 1만 원씩 떼서 건네주시는 할머니, 고춧가루를 매년 나눠주는 화수시장 상인 등 작지만 따뜻한 사람들의 정성이 매일 모여든다.
지난 7년간 날마다 착한 이웃 덕분에 하느님 나라의 잔치를 벌여 왔다고 저자는 말하지만 행복한 일만 이어졌던 것은 결코 아니다. 술 취한 손님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욕을 얻어먹기도 하고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마련한 ‘민들레의 집’ 식구들이 방 보증금을 빼서 달아나기도 했다. 쌀이 떨어지고 수도요금을 못 내 앞이 캄캄했던 때도 많았다. 하지만 저자는 힘들 때마다 벽에 적어놓고 가슴에 되새긴다는 김남주 시인의 시구처럼 ‘사랑만이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안다’고 믿는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