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활동 당시 핫팬츠와 \'배꼽춤\'으로 선정성 논란에 휘말렸던 걸그룹 레인보우는 신곡 마하로 무대에 오른 10월에는 검은 스타킹을 매치해 차분한 의상을 보였다. 의상의 변화가 확연하다. 사진= 방송화면 캡처
#2. 신곡 '점핑'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활동을 시작한 걸그룹 카라는 국내에서는 일본 활동 당시 선보였던 의상을 전면 수정해 무대에 올랐다. 20일 MBC '쇼 음악중심'에서 국내 컴백 무대를 가진 카라는 노출이 전혀 없는 의상을 입었다. 당초 배꼽과 허리 부분을 드러내 몸매를 강조하던 의상은 차분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지난 6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의 지상파 방송 3사 가요프로그램에 대한 '선정성 주의 권고' 이후 방송사들은 자체 규정을 정해 노출 수위가 높은 걸그룹의 의상을 규제하고 나섰다. 그동안 걸그룹의 과도한 노출과 선정적인 안무가 여러차례 논란이 돼 왔기 때문.
이에 김인규 KBS 사장은 "사회 통념을 벗어난 선정적인 복장에 대해서는 자체적으로 점검하고 있다"며 "특히 '뮤직뱅크'의 경우 이런 위험성이 있는 만큼 미성년 가수들에 맞는 의상과 안무를 별도로 준비하도록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답했다.
▶ 의상규제 후 실제 변화는?
이후 걸그룹들의 방송 무대용 의상은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했다. 드러냈던 몸을 모두 가리는 의상을 선택했고, 안무에도 변화가 생겼다.
가장 달라진 점은 맨 살 노출이 줄었다는 점이다. 이달 초 방송된 KBS 2TV의 '뮤직뱅크' SBS의 '인기가요' MBC '쇼 음악중심' 등 지상파 3사 대표 음악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과거 흔히 볼 수 있던 배꼽과 허리 주위 노출은 물론 등이 파인 의상도 거의 자취를 감췄다.
방송사 의상 규제는 기본적으로 민소매를 제외한 맨살 노출을 금지하고 있다. 특히 배꼽과 허벅지, 가슴골의 노출은 주요 제재 대상이다. 맨살 노출이 이뤄지는 퍼포먼스도 할 수 없다. 더불어 선정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의상도 금지 대상으로 분류됐다.
일본 뮤직비디오에서 배꼽과 허리부위가 노출된 의상을 선보였던 카라는 국내 무대에선 상당히 차분한 의상을 선택했다. 사진= 방송화면 캡처
▶ 각 방송사의 규제는 어떻게?
현재 지상파 3사 모두 의상규제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기준은 각기 다르다. KBS가 가장 적극적이다. SBS는 출연 전 가수들과 합의에 나서는 등 여지를 남겨뒀고, MBC는 비교적 의상에 자유로운 편이다.
KBS는 10월 국정감사 후 김인규 사장이 직접 나서 의상 규제를 챙겼다. 이에 '뮤직뱅크' 제작진은 맨살 노출 및 신체 특정 부분이 부각되는 의상을 전면 금지하고 나섰다. 앞서 국정감사에서 김 사장이 밝힌 대로 KBS는 가수들의 복장에 대해 내부적인 규칙을 정해 적용하고 있었다. 제작진은 필요에 따라 치마 길이 등 더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BS는 8월 17일 발표한 제작 가이드라인을 통해 여성 아이돌 그룹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앞으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특정 신체 부위에 대한 세밀한 묘사, 과도한 노출 등 민망한 소재를 줄이게 된다. 걸그룹에 해당되는 '청소년 출연자의 지나친 선정적 퍼포먼스를 자제한다'는 규정은 있으나 표현이 모호해 여지를 남겨둔 셈이 됐다.
MBC는 복장에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일례로 최근 방송에서 소녀시대와 임정희의 핫팬츠를 허용했다. MBC '쇼 음악중심'의 김유곤 PD는 "선정성의 판단은 의상도 중요하지만 노래와 춤이 주는 느낌도 중요하다. 핫팬츠라도 선정적이란 느낌을 주지 않으면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분분한 의견, 어떻게 나뉘나?
방송사의 걸그룹 의상 규제가 본격화 된 후 이를 두고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시대착오적이고 불필요한 대응이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찬성 측은 미성년자도 포함된 멤버들의 인권을 우려하고 있고, 반대 측은 가수들의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다.
규제를 주장하는 인권론자들은 청소년 가수들의 경우 소속사의 강압으로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을 수 있고, 이를 거부할 능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미리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한석현 팀장은 "아이돌 멤버 중 다수가 10대 청소년이다. 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노출의상을 권유하는 소속사는 문제가 있다"며 "적절한 규제를 통해 청소년 가수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걸그룹들의 패션을 해당 프로그램의 주 시청자인 10대가 따라 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여성가족부에서 운영하는 사이트 '위민넷'은 "걸그룹의 노출은 비슷한 나이대의 청소년에게 모방심리를 자극한다"며 "이는 판단력이 미성숙한 청소년들의 성적 욕구를 자극해 심할 경우 성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의상규제는 가수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의견도 거세다. 의상 규제 자체가 시대의 통념을 거스른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한 걸그룹 소속사 측은 "가수들의 개성을 생각하지 않고 획일적인 잣대로 의상을 규제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마치 70년대 방송 규제를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보여줄 수 밖에 없는 가수들의 퍼포먼스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점도 반대하는 이유로 꼽혔다. 한 걸그룹의 스타일 담당은 "가수들의 의상은 노래, 안무와 더불어 퍼포먼스를 완성시키는 역할을 한다"며 "갑작스런 의상 규제로 우리 가수들의 개성을 드러내기 힘들어졌다"고 불만스러워했다.
걸그룹 나인뮤지스는 활동 초기 멤버들의 섹시 콘셉트를 부각시키기 위해 '가터밸트'까지 입고 나왔으나 선정성 논란에 휘말린 후 긴 바지와 스타킹을 매치하는 의상으로 방향을 바꿨다. 사진= 방송화면 캡처
▶ 시청자들의 반응은?
의상에 대해 가장 강력한 규제를 하고 있는 KBS '뮤직뱅크' 게시판에는 찬반으로 나뉜 시청자들의 글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며 평행선을 그리고 있었다.
시청자 이 모 씨는 12일 KBS 시청자 게시판에 "최근 '뮤직뱅크'가 의상규제에 들어간 후 모든 여자 가수들이 같은 옷을 입은 것 같아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 "노출 규제에 대한 정확한 잣대도 없고 근본적인 대책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가수들이 자신만의 무대를 보여줄 권리와 시청자들의 볼 권리를 존중해주길 바란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또 다른 시청자 김 모 씨도 "선정성이 문제라면 심한 노출과 성적표현을 담은 퍼포먼스만 규제하면 될 텐데 모든 가수들의 의상을 규제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짧은 의상만 단속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반면 걸그룹들의 의상 제한 조치는 잘한 일이라는 글도 이어졌다. 시청자 김 모 씨는 5일 "그동안 가족들과 뮤직뱅크를 보면 얼굴이 화끈거려 채널을 돌릴 때가 많았는데, 이제 좀 나아진 것 같다"며 "앞으로도 규제를 제대로 지켜달라"는 글을 남겼다.
시청자 임 모 씨도 "요새 청소년이나 어른이나 '섹시하다'는 컨셉트 하나로 모든 걸 나타내려는 경향이 심해져 아이를 둔 부모로서 걱정이었는데 최근 좀 달라진 것 같아 그나마 안심이다"고 말했다.
▶ "획일적인 규제, 강제성은 안돼"
현재 일부 방송국의 의상 규제는 일방적인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다. 방송사가 판단한 자체 기준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구조다. 아니면 '방송 불가'다.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은 "KBS와 같은 공영방송에서 선정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의상규제를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면서도 "여름철 거리에는 걸그룹 의상보다 노출이 심한 것도 많지만, 이들도 선정적이란 이유로 모두 규제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 70년대처럼 치마 길이까지 지정해 규제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의상 제한이 불가피하다면 강제적인 규제보단 합의가 먼저일 것"이라고 말했다.
용진 동아닷컴 기자 au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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