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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두 알리의 우당탕 이종격투기… 승자는 없었다

입력 | 2010-11-30 03:00:00

연극 ‘누가 무하마드 알리의 관자놀이에 미사일 펀치를 꽂았는가?’

대본★★★☆ 연출★★★☆
연기★★★☆ 무대★★★★




이질적 요소들의 충돌을 통해 한국사회의 이중성에 웃음의 강펀치를 날리는 연극 ‘누가 무하마드 알리의 관자놀이에 미사일 펀치를 꽂았는가?’ 사진 제공 남산예술센터


1라운드 땡. 아 이건 뭐 이종격투기가 따로 없네요. 사각의 링을 연상시키는 무대세트와 권투글러브를 낀 배우들 때문만은 아니죠. 온갖 이질적 요소가 무대에서 충돌에 충돌을 거듭하기 때문이죠.

먼저 ‘얄개들’이란 남성 4인조 인디밴드의 콘서트와 열일곱 명의 남자배우로만 구성된 드라마가 부딪칩니다. “저희 노래는 ‘찌질한’ 사랑노래밖에 없어요”라는 ‘얄개들’은 연극 중간 중간 극 전개와 무관한 사랑노래만 줄곧 부르는군요. 연극도 따로 놀긴 마찬가지예요. 거친 입담과 치열한 독설로 무장한 채 묵직한 현실비판을 코믹 코드로 풀어내고 있거든요.

연극 내용도 이종충돌의 연속이에요. 우선 거창한 제목 속 무하마드 알리가 둘이네요. 파키스탄 출신인 한국 내 불법체류 노동자(신재환)와 본명이 캐시어스 클레이였던 미국의 전설적 권투선수(이종윤)죠. 9개의 에피소드를 9라운드 권투경기처럼 구성한 연극에서 라운드마다 아무런 상관이 없는 두 알리의 대조적 삶이 병치되는 거죠.

‘떠버리’로 불렸던 챔피언 알리는 영어로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속사포처럼 쏘아대네요. 대부분 알리가 실제 남긴 어록에서 발췌한 거예요. 반면 어눌한 노동자 알리의 삶은 주로 그를 괴롭힌 한국인 가해자들의 증언으로 구성됩니다. 임금을 체불한 악덕업주(이철희), 노점상이 된 알리를 못살게 구는 마트 사장(이광진)과 단속공무원(김문호), 무슬림인 알리를 기독교도로 억지 개종시키려는 조폭 출신 교회 장로(이성훈) 등등.

2라운드 땡. 네, 챔피언 알리는 승승장구하는데 노동자 알리는 연전연패네요. 그러고 보니 둘 다 무슬림에 인종차별과 종교차별로 고생한다는 공통점이 보이네요. 하지만 천재복서인 알리는 세상의 차별에 어퍼컷을 날리고 있는데 노동자 알리는 줄곧 두들겨 맞기만 하네요. 거의 그로기예요, 그로기.

그런데 노동자 알리에게 말 펀치를 먹이는 저 선수들 행태가 꼭 ‘개그콘서트’에 등장하는 개그맨들 같지 않은가요. 저마다 캐릭터도 다르고 말투도 다르고. 스탠딩 개그를 할 때도 있고 콩트를 구성할 때도 있고 슬랩스틱 코미디에 가학적 몸 개그를 펼칠 때도 있어요. 하나는 똑같네. 알리를 핍박한 자기들이 피해자라고 우기는 거.

3라운드 땡. 아, 경기가 너무 길어요. 중간휴식도 없이 2시간 40분. 이게 뭐 알리와 포먼의 세기의 대결도 아닌데 관객들 뒷부분에 지친 기색이 역력해요. 그러고 보면 관객의 주의력을 산만하게 만드는 요소가 너무 많아요. 음악과 드라마가 따로 노는 것도 부족해 챔피언 알리는 영어로 떠들고 노동자 알리를 괴롭힌 이들은 한국어로 동시에 떠들고 있으니. 게다가 핸드헬드 카메라로 현장에서 촬영한 영상은 물론 챔피언 알리의 영어대사를 번역한 한글대사까지 듬성듬성 이가 빠진 나무판자에 쏘아대고 있잖아요. 연출가(윤한솔)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에 걸리지 않았나 의심될 정도예요.

결정적으로 아쉬운 점은 안재승 작가가 택한 결말이에요. 노동자 알리를 한국사회의 편견의 희생양으로 그리면서 추방당했던 알리가 돌아와 복수혈전을 펼쳐 영웅이 된다는 설정이 현실성도 떨어지지만 예술적 완성도에서도 아쉬움이 남아요. 9라운드에서 알리를 핍박했던 인물들을 예수와 열두 제자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형상으로 묘사하잖아요. 아무리 무슬림인 알리의 시각이라 해도 인류의 희생양 문화를 뿌리째 전복하려 한 예수와 그 제자들을 희생양 문화의 수혜자로 형상화한 거야말로 종교적 몰이해 아닐까요. 그보단 조폭 출신 교회장로의 협박에 십자가를 짊어진 알리의 형상이 복음주의에 사로잡힌 한국기독교에 대한 비판으로 더 설득력 있게 다가섭니다.
:i:
1만5000∼2만5000원. 12월 5일까지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02-758-2150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