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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한국의 노벨 과학상 수상 아직 멀다

입력 | 2010-12-03 03:00:00


한국이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했고 국가적 위상도 높아졌지만 아직 넘지 못하는 벽이 있다.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9월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를 방문했다. 이 대통령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에서만 16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대학 관계자의 말에 위축이 됐다고 최근 한 자리에서 털어놓았다.

이유 있는 美英獨日의 독점


과학 저널인 네이처는 올해 노벨 물리학상 심사에서 한국인 과학자가 심사위원의 실수로 수상자 명단에서 제외됐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신(新)물질 그래핀 연구의 선두주자 2명이 받았다. 이들에게 상을 주면서 역시 이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김필립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에게 상을 주지 않은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었다. 국내 과학계도 아쉬움과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을 놓고 그만큼 한국이 노벨 과학상 수상에 근접한 것이 아니냐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지난 30년 동안 노벨 과학상 수상 통계를 보면 오히려 한국이 노벨 과학상을 받는 일은 당분간 어렵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노벨 과학상은 미국 영국 독일 3개국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1981년부터 2010년까지 전체 수상자 213명 가운데 미국이 116명을 배출해 54.5%를 차지했고 영국이 20명(9.4%), 독일이 18명(8.5%)의 수상자를 냈다. ‘3강’ 구도에 도전장을 던진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2000년 이후 9명의 수상자를 배출해 2000년 이후 수상 실적만 놓고 보면 독일을 제치고 3위에 올라 있다.

이들 ‘3강’ 혹은 ‘4강’ 국가들은 100년 이상 기초과학 연구에 공을 들여온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10차례의 노벨 과학상 수상을 이뤄낸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연원은 19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19세기 말 메이지 일왕 시대부터 부국강병책의 일환으로 기초과학 육성에 나섰다. 거점 대학의 하나인 도쿄대는 1877년 창립됐고 핵심 연구기관인 이화학연구소는 1917년 문을 열었다. 오랜 기간 축적된 역량과 연구 기반이 있어야 수상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에 수상국 대열에 새로 합류하는 국가는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기존에 상을 받았던 나라들이 돌아가며 받고 있는 것이다. 수상자가 소속된 대학들도 세계 톱클래스로 분류된 곳이 대부분이다. 수상자들이 30대의 나이에 새로 찾아낸 이론이나 발견으로 60대 이후에 상을 받는 흐름도 굳어지고 있다. 어느 분야보다도 극소수의 선진국이 다른 국가의 접근을 차단한 채 굳건한 성(城)을 쌓아 놓고 있는 모습이다.

STEM교육 강화 등 부단한 준비를

한국은 1980년대 이후 기초과학 지원에 본격적으로 나서 기초과학 연구 역사가 3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대학도 아직 없다.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이 지금 획기적인 연구업적을 내더라도 상을 받으려면 20, 30년을 기다려야 한다. 한국의 노벨 과학상 수상에는 비관적인 재료는 많아도 희망적인 근거는 별로 없어 보인다.

노벨 과학상 수상이 한국 과학기술의 최종 목표가 될 수는 없으나 한국의 수준을 널리 인정받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 한국의 과학 수준을 높이기 위한 작업을 차근차근 부단히 해나가면 장차 상을 받을 수 있는 확률도 커지게 마련이다. 노벨 과학상 수상에서 독주하고 있는 미국은 현재의 위치도 만족스럽지 못한지 2007년 STEM 교육의 강화를 새 국가의제로 내놓았다. STEM은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수학(Mathematics)의 영문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로 이 분야 육성에 미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보고 해당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 역시 기초 다지기 작업부터 해나가야 한다. 2007년 당시 미국 국가과학위원회가 제시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정부가 과학기술 교육과 발전에 강한 주도력을 발휘해야 하며 유능한 과학 교사를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와 관련한 한국의 현실은 어둡기 짝이 없다. 정부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해 국내 과학기술의 컨트롤타워로 만들겠다는 구상 아래 국회에 법안을 상정해 놓고 있다. 하지만 야당이 이 법안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야가 다른 정치 싸움에 매달리다 보면 법안이 표류할 수 있다고 과학계는 우려하고 있다. 우리의 초중고교 과학 교육은 학생들의 기피 대상에 올라 있어 유능한 교사 육성을 논의할 단계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노벨 과학상은 한 나라의 기초가 얼마나 탄탄한지를 겨루는 경쟁이다. 한국의 과학기술이 짧은 연륜에 비해 많이 발전한 게 사실이지만 모든 것이 선진국보다 크게 미흡한 현 시점에서 상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지 모른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