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의 마지막 저녁식사/되르데 쉬퍼 지음/웅진지식하우스
《“‘마지막 식사, 어떤 음식을 먹겠습니까?’ 이 질문의 답을 찾는 동안 당신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지, 얼마나 많은 인생의 장면이 스쳐 가는지 모를 것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맛볼 수 있었던 간식, 세상에서 엄마만이 만들 수 있었던 요리, 꼭 맛보고 싶었던 이름만 알고 있는 외국의 희귀 요리…. 당시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불현듯 생각날 수 있다.”》
요리사 루프레히트 슈미트 씨는 11년 전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호스피스 ‘로이히트포이어(등대 불빛)’에 첫발을 들여놓을 때만 해도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처음엔 호스피스 입주민들을 위해 몸에 좋은 요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그런 건강식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이 원한 건 평소 먹던 음식이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슈미트 씨는 각 입주민이 주문하는 음식을 성심껏 만들기 시작했다.
슈미트 씨는 최고급 레스토랑의 인정받는 수석요리사였으나 채워지지 않는 삶의 허기 때문에 호스피스 요리사를 택했다.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보통 사람들은 몇 주 후든 몇 달 후든 이 식당에 또 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죽음을 앞둔 이들에겐 지금의 식사가 마지막 식사가 될 수도 있어요. 이 음식을 다시 맛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 음식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요.”
그는 매일 아침 현관의 초에 눈길을 던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촛불이 켜져 있으면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표시다. 어느 날 촛불이 켜져 있었다. 간밤에 세상을 떠난 사람은 쉰 살의 여성이었다. 슈미트 씨는 명복을 비는 마음 한 편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흘 전, 그녀가 원하던 메기 요리를 해줬기 때문이다.
그는 시어머니가 만들어주던 ‘랍스카우스’라는 요리를 주문한 한 부인을 떠올렸다. 금요일에 주문을 받은 뒤 주말에 쉬고 재료를 준비해 월요일 일찍 출근했지만 부인은 지난 토요일 이미 세상을 뜨고 난 뒤였다. 이곳 손님들이 원하는 음식을 만드는 데는 늑장을 부려선 안 된다는 점을 새삼 느꼈다.
고통 때문에 음식을 한 숟가락도 못 먹고 뱉어내는 사람도 많다. 그래도 슈미트 씨는 개의치 않는다. 그들이 먹는 건 음식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딸과 엄마가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애정이기도 하고,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의 애틋한 사랑이기도 하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