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JUST DO IT/기자체험시리즈]‘농구코트의 꽃’ 마스코트 1일 도전

입력 | 2010-12-04 03:00:00

탈 쓰면 찜질방… 갈채 없었다면 진작 누웠다




농구장 마스코트 체험에 나선 본보 신진우 기자가 2일 원주에서 열린 동부-KCC 경기에서 동부 마스코트 그린몬으로 변신해 관중의 함성을 유도하며 흥을 돋우고 있다. 사진 제공 동부 프로미

전광판을 바라봤다. 남은 시간은 3분.

머릿속은 이미 하얘진 지 오래. 이마에서 흘린 땀은 눈을 찔러 따끔거렸다. 형용할 수 없는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타는 목마름은 이미 10분 전부터 바로 옆에 놓인 음료수를 달라고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음료수를 마실 수도 땀을 닦을 수도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피곤한 표정을 지었음에도 나를 본 관중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댔다. 째깍째깍. 1시간처럼 더디게 흐르는 1초. 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2쿼터까지만 한다고 할 것을….’

○ 가볍게 몸이나 푼다고?

2일 오후 2시. 호기롭게 프로농구 동부의 홈구장인 강원 원주 치악체육관 정문에 들어섰다. 구단 관계자들이 반갑게 맞으며 한마디씩 건넸다. “오늘 ‘체험, 삶의 현장’ 한다면서요?” 웃으며 받아쳤다. “그 정도까진 아니고 그냥 가볍게 몸이나 풀 생각으로 왔어요.” 하지만 1시간도 되지 않아 이 체험이 절대 ‘가볍지’ 않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코트에 들어서자 낯익은 인물이 기자를 맞았다. 마스코트계의 살아있는 전설 길윤호 씨(27). 길 씨는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프로축구 FC 서울 등에서 마스코트 탈을 쓰고 경기장 분위기를 책임지고 있다. 특히 넥센의 마스코트 ‘턱돌이’는 구단을 넘어 전 야구팬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다. 길 씨는 “여름에 턱돌이가 있다면 겨울엔 동부 마스코트 ‘프로맨’과 ‘그린몬’이 있다”며 “이들도 턱돌이 못지않은 유명 인사로 만들 생각”이라고 했다.

○ “일단 쓰면 벗을 수 없어요”

길 씨로부터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바로 실전에 들어갔다.

첫 미션은 스트레칭. 길 씨는 “스트레칭을 충분히 하지 않으면 전반전이 끝나기도 전에 다리가 풀린다”며 뻣뻣한 기자의 몸을 무자비하게 눌러댔다. 20분 동안 스트레칭을 하니 이미 다리가 풀렸다. 다음은 표정 연기. 어차피 탈을 써서 보이지도 않을 텐데 표정 연기가 왜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따끔한 한마디가 돌아왔다. “표정이 살아있어야 몸짓 하나하나가 살거든요. 감정이입이 안 된 마스코트는 코트에 설 자격이 없습니다.”

팬들과 악수하는 각도, 사진 찍는 포즈 하나까지 노하우를 전수받은 뒤 드디어 의상실에 들어갔다. 다양한 소품으로 가득 채워진 의상실 구석에 놓인 녹색 탈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오늘 기자님이 쓸 가면입니다.” ‘녹색 괴물’ 아마추어 그린몬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가면을 쓰니 생각보다 시야가 좁아 답답했다. 무게도 무게지만 공기가 잘 안 통해 몇 분 지나지 않아 얼굴이 화끈거리고 간지러웠다. 답답한 마음에 가면을 벗어 던졌더니 길 씨로부터 따끔한 지적이 날아왔다. “탈과 의상에 익숙해져야 해요.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탈을 벗을 수 없거든요. 탈을 벗는 순간 마스코트의 생명인 신비감도 사라집니다.”

○ 팬들의 응원이 보약


오후 7시. 경기가 시작됐다. 분 단위로 빼곡하게 적힌 큐 시트에 따라 10차례 넘게 프로그램을 숙지하고 동작도 연습했지만 막상 팬들이 경기장을 가득 채우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탈의 마력 덕분일까. 점차 처음의 어색함을 떨치고 과감해졌다. 늘씬한 치어리더들에게 장난도 걸어보고, 평생 해보지 않을 법한 귀여운 포즈도 취해봤다. 2쿼터 중반 작전타임 땐 구단 배려로 단독 공연 기회까지 가졌다. 댄스곡에 맞춰 학창 시절 장기자랑 때 췄던 춤 실력을 발휘했다. 내가 생각해도 어설픈 공연. 공연이 끝나자 장내 아나운서가 “가면을 벗어달라”고 깜짝 요청을 했다. 그리고선 “동아일보 기자가 원주 팬들을 위해 마스코트 체험을 하러 왔다”고 소개해 줬다. 수천 명 팬으로부터 쏟아진 격려의 박수. 눈물나게 고마웠다.

드디어 종료 버저가 울렸다. 안도의 한숨과 ‘더 잘할 수 있었는데’란 아쉬움이 교차했다. 긴장감으로 뻣뻣하게 뭉쳤던 근육도 이때서야 조금씩 풀렸다. 각종 이벤트에 사진촬영 요청, 분위기 메이커 역할까지. 초 단위로 돌아가는 농구 코트에서 마스코트는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피곤함을 잊게 해주는 보약이 있었다. 바로 승리의 짜릿함과 팬들의 응원이었다.

원주=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