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사태가 터진 11월 23일부터 e-춘추관의 브리핑룸을 살펴보면 홍 수석과 김 대변인이 번갈아 브리핑에 나선다. 24일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는 홍 수석이, 각국 정상들과의 통화는 김 대변인이 하는 식이다. 김 대변인은 학창 시절에 대명여고 학생회장, 연세대 응원단 여자 기수단장을 맡을 만큼 활달하고 33세에 지역구 국회의원(부산 연제)을 지냈다. 대가 세다는 말을 듣는다. 청와대 참모의 파워는 대통령과 만나는 빈도에 의해 좌우된다. 대선 캠프 때부터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고 대통령과 만나는 횟수도 많아 홍 수석이 김 대변인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관전평이다. 홍 수석이 들어온 회의에 김 대변인이 함께 들어와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대통령 리더십 흔든 ‘확전 논란’
포격이 끝났는지, 안 끝났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국민을 실망시키고 적에게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이렇게 허술한 과정을 거쳐 텔레비전 화면에 긴급특보 자막으로 뜬 것이다. 청와대는 이 발언이 문제가 되자 네 차례나 말을 바꾸었다. 확전 논란 파문이 커지면서 천안함 때부터 군의 부정확한 보고와 관련해 일부 책임이 제기된 김 국방비서관만 경질됐다. 김 대변인은 문책을 비켜갔다. 김 대변인은 “모두 내 책임”이라고 자책하는 발언을 하고 다니지만 “실제로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참모회의에서 상당히 많은 내용을 언급했다. 대통령의 발언 중에서 무엇을 골라 국민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는 고도의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정치에 몸담기 전에 평생 기업인으로 살아 경제 마인드가 체질화한 이 대통령이 안보와 관련한 말을 쏟아내다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걱정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연평도에 포연이 자욱한 상황에서 어떤 말을 헤드라인으로 뽑아 전달하느냐는 신중하고 전문적인 조율이 필요하다. 연평도 사태와 같은 준전시(準戰時)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무방비로 노출돼서도 안 될뿐더러 한목소리가 원칙이다. 이 정도로 위중한 상황이라면 이희원 안보특별보좌관이 대통령의 메시지를 검토하는 절차를 거쳤어야 한다.
일반인도 무시로 들어갈 수 있는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이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을 방문했을 때의 사진 8컷이 공개돼 있다. 이 중에는 대통령이 지하벙커 내부 복도를 걸어가는 모습도 들어 있다. 합동참모본부 벙커를 이렇게 북한에서도 쉽게 들어와 볼 수 있는 곳에 공개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민감한 군사기밀과 관련한 사항을 이벤트 감각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닌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알카에다와 전쟁을 벌일 때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애리 플라이셔의 저서 ‘대변인’에는 “대변인은 두 명의 상관을 모시는 직업”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한 상관은 대통령이고 다른 하나는 언론이다. 군사기밀과 국민의 알권리가 건건이 충돌하는 현장을 잘 헤쳐 나가려면 대변인은 대통령의 말을 직접화법으로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자신의 이야기로 상황을 설명할 줄 아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 월맹공습과 같은 주요 사항은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이 직접 브리핑을 했다. 그런데 우리 청와대에선 국가적 위기상황임에도 안보특보나 국방비서관은 마이크 앞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군 및 전투에 대해 잘 모르고, 차기 총선을 많이 의식하는 여성 대변인이 안보 관련 브리핑을 전담하는 것의 문제점을 청와대 사람들은 잘 알고 있지만 안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