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 도발로 대한민국 안보태세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졌다. 앞선 경제력과 최첨단 무기를 내세워 도발 즉시 초토화시키겠다던 군 지도부는 나약함만 드러냈다. 천안함 폭침으로 46명의 장병이 희생된 지 얼마나 됐다고 민간지역까지 무차별 포격하는 북한군을 즉각 응징하지 못해 국민에게 좌절감을 안긴 대통령과 군 지도부, 이렇게 ‘물렁 군대’로 만들어놓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정부가 뒤늦게 K-9 자주포를 더 투입하고 다연장로켓포를 새로 배치하는 등 전력 증강을 서두르고 있다. 해병대가 20년 넘게 목이 아프게 전력 강화를 요구했지만 번번이 묵살당했다고 한다. 육군 중심의 군 운용에서 ‘귀신 잡는’ 해병대는 찬밥 신세였고, 헬기 한 대 없어 해군도 아닌 해경의 신세를 지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연평도의 병력을 감축할 계획을 추진하기도 했다. 햇볕정책을 내세운 좌파정권 10년 동안 군은 주적(主敵) 개념을 없앴고, 북한의 눈치를 보며 교전규칙 운운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해안포만 녹슨 게 아니라 국민 안보의식도 야금야금 좀이 슬었다. 북한을 비판하는 사람은 ‘수구꼴통’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군 장교가 되겠다는 육군사관학교 가(假)입교생들조차 34%가 ‘우리의 주적’으로 미국을 꼽았고 북한이란 응답자는 33%에 불과했다니 말이다.
그렇지만 포탄이 터지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철모에 불이 붙고 입술에 화상을 입은 줄도 모르고 대응 포격에 나선 젊은 해병들의 투철한 군인정신은 한 가닥 위안을 안겨준다. 휴가 중이던 해병대원 1500여 명이 즉시 부대로 복귀했다. 연평도 도발 이후에도 해병대에 지원자가 몰리고 있다니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인철 사회부장 in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