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 못다한 우승 뒷 이야기
이때까지는 좋았는데… 김치우는 FC서울 챔피언결정전의 영웅이다. 1일 제주와의 챔프 1차전에서 극적인 동점 골을 넣으며 소속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5일 챔프 2차전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 정조국의 머리에 샴페인을 부으며 기뻐하던 김치우는 6일 군에 입대했다.
최효진·이종민 등과 상무 동반입대
우승의 기쁨도 잠시…두려움 밀려와
제주 골키퍼 김호준 작년까지 한팀
방향 들킬라…정조국 PK 가운데로어깨를 짓누르던 오랜 짐을 드디어 덜어냈다. 올 시즌 K리그를 평정한 FC서울.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연출한 한 편의 드라마는 축구 팬들에게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입증시켰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서울 멤버들은 내내 의기양양했다. 서울이 정상에 서던 날, 어떤 일이 있었을까.
○군대에서 머리 공짜로 깎아준다고?
누구보다 행복했지만 누구보다 떨렸을 3총사가 있다. 6일 상무축구단에 입대한 김치우, 최효진, 이종민이 그 주인공들. 상무에 지원서를 낸 이들은 당초 정규리그가 끝난 뒤 입대 예정이었으나 서울 구단과 프로축구연맹의 도움으로 입대시기를 챔피언결정전 이후로 미뤄 동료들과 함께 우승의 기쁨을 나눌 수 있었다.
“얘들아, 내일 군대 앞에 가면 공짜로 깎아줘.” 이 말을 누가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2008년은 반복하지 말자!
정규리그 1위로 챔프전에 직행한 서울. 자칫 흐트러질 수 있는 팀 분위기를 늘 긴장감이 있도록 유지시켜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당연히 고참이 나섰다. 주장 박용호(28)였다. 9월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한 동안 출전하지 못하던 그였기에 이번 챔프전은 너무 소중하고 각별했다. 그런 박용호는 항상 훈련 전후로 동료들을 불러놓고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단다. 1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챔프 1차전 이후 2차전까지 남은 사흘간의 시간. 서울 선수들은 항상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박용호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한다.
‘당부’ ‘읍소’ ‘윽박’이 두루 섞여있었다나? “우리가 이번에 잊지 말아야할 게 있다. 2차전이 끝난 뒤 2008년처럼 기분 나쁜 눈물은 흘리지 말자. 제발….” 약효가 있었기 때문일까. 2년 전, 정상 문턱에서 ‘라이벌’ 수원 삼성에 무너진 서울은 당당히 챔피언에 등극했다.
○정조국, “전 원래 당당한 놈이었는데”
그러나 이번만큼은 유난히 떨렸다. 공을 잡고 킥 포지션을 잡을 때 심장이 하도 두근거려 터지는 줄 알았단다. 충분히 이유가 있었다. 제주 골키퍼가 지난 시즌까지 정조국과 한 솥밥을 먹었던 김호준이었기 때문이다. “호준이가 연습할 때 얼마나 제 슛을 막아봤겠어요? 전 스스로를 ‘담대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그렇지 못했죠.” 한 가운데에 슛을 날린 건 김호준이 이미 자신이 좋아하는 킥의 방향을 알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모험을 할 수 밖에 없었단다.
○더 이상 서울의 놀이터는 없어요
한 때 강남의 모 나이트클럽은 서울 선수들의 놀이터라는 소문이 들릴 정도로 서울 선수들이 즐겨 찾는 장소였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시즌 도중 술을 마시며 유흥 문화를 접한다는 소식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아니, 아예 한 건도 전달되지 않았다는 게 서울 코칭스태프의 귀띔. 물론 혈기왕성한 20대 젊은 선수들이 많기에 때론 알코올을 섭취하며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지만 올 시즌은 서울 선수단이 스스로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우승을 노리는 구단의 압박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이겠지만. 술을 마시면 몸 상태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걸 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고참급 멤버들의 영입도 180도 달라진 서울 문화에 큰 몫을 했다. 이승렬은 “올해 유흥을 접할 틈이 없었다. 우승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기에 한 눈을 팔 수 없었다. 형들을 중심으로 분위기를 만들어갔다”고 했다. 이승렬은 수중에 돈이 있으면 일찍 써버릴까 월급이 들어올 때 계좌이체로 저축을 했고, 한 달 용돈은 작년의 절반인 50만 원만 사용했단다.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사진ㅣ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