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진정한 사랑의 회복을 꿈꾸는 극단 전망의 연극 ‘사랑이 온다’. 아비의 무차별적 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출했다가 15년 만에 돌아온 아들(김수현)이 반신불수가 된 아버지(박경근)를 맹수의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사진 제공 극단 전망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프로이트는 이런 메커니즘을 읽어냈다. 대표적인 것이 신화 속의 친부 살해와 어린 시절 겪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유사성을 조명한 것이다. 인류 문화의 기원에 아버지에 대한 집단살해와 그에 대한 죄의식이 숨어있다면서 이를 ‘초석(礎石)적 살해’로 명명한 것도 프로이트였다.
1∼5일 서울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공연된 극단 전망의 ‘사랑이 온다’(배봉기 작, 심재찬 연출)는 이 ‘초석적 살해’의 신화적 구조를 전복한다.
“당신이 날 미치게 만든 거야. 다섯 살도 안 되었을 때부터 10년이 넘게 악마 같은 짐승 새끼를 내 속에 심었어. 집 나가 15년 동안 이 짐승 새끼와 싸웠어. 그래도 안 돼. 이 짐승 새끼는 원래 주인을 죽이기 전에는 안 죽어. 그 주인이 먹여 키웠거든.”
그는 자신에게 끔찍한 씨앗을 심은 아비를 죽여서라도 그 악순환을 끊어내겠다고 선언한다. 늙은 아비는 공포에 사로잡혀 비명을 지르고, 억장이 무너진 어미는 온몸으로 괴물이 된 아들을 막아선다.
‘오빠가 돌아왔다’가 가정폭력을 희화화한 블랙코미디라면 ‘사랑이 온다’는 그 소름끼치는 심연을 응시하는 비극이다. 비극성은 반복을 통해 강화된다. 아들의 방문은 세 차례 이뤄진다. 그때마다 동행하는 여인이 바뀌고, 자신 안의 짐승과 싸우느라 아들의 몰골은 갈수록 피폐해진다. 그와 더불어 아들을 바라보는 관객의 심정은 아들이 아비보다 더한 괴물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어미의 처절한 그것으로 바뀐다.
무엇으로 이 지긋지긋한 폭력의 대물림을 끊어낼 것인가. 연극은 용서와 화해를 섣불리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문신처럼 새겨진 폭력의 독소를 제거하려면 그보다 더 길고 고통스러운 해독 과정이 필요함을 절절하게 보여준다.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끔찍이도 미워했던 폭력의 대물림에 몸부림치는 아들 역을 연기한 김수현 씨의 연기는 올해 발견한 최고의 연기였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